역사전쟁이 ‘또’ 벌어졌다. 돌이켜보면 2015년 국정교과서 대전, 2008년 이명박 정권 당시의 근현대사 교과서 논쟁,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실패 후 뉴라이트의 총공세 등 21세기 들어 벌써 네 번째이다. 이번 전쟁은 제발 국지전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는데, 다행히 논쟁의 한 축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점령군이냐 아니냐. 역사적인, 국제법적인 논쟁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발을 빼는 형국이다. 전쟁사를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충돌의 발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 미군이 점령군이냐 여부도 사실 학문적 논쟁거리가 될 수 없는 문제였다. 미국 정부도, 맥아더도, 미군정 당국도, 이승만을 비롯한 우익지도자들도, 당시의 주요 언론들도 모두 미군을 점령군이라 칭했는데, 이제와 미군을 점령군이라 부르면 대한민국이 부정되는 양 호들갑을 떠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처가 일로 곤경에 처한 윤석열 전 총장 측이 부정적인 이슈를 덮으려 ‘점령군’ 문제를 제기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반대 입장도 있다. “이재명이 던진 미끼를 윤석열이 덥석 물었다”며 “정치 감각 노련한 이 지사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 발언을 스스로 노출시켰다. 후폭풍을 예상 못했을 리 만무하다”(서울신문 7월7일 황수정 칼럼)는 평가도 있는 것을 보면 윤석열 전 총장이 꼭 남는 장사를 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하긴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확증편향의 시대에 이런 논쟁의 득실은 따져 무엇하겠는가?
유신독재 시절 한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해주던 미국이 광주의 학살자 전두환을 끌어안자 당시의 청년학생들은 미국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를 구해준 고마운 미국이라는 인식은 분단도 동족상잔도 미국 때문이라는 분노로 대체되었다. 학교에서는 현대사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옛 신문잡지를 뒤지다 발견한 미군과 소련군의 첫 포고문은 충격이었다. ‘꼼짝 말고 복종하라’는 미군의 포고문은 점령군의 언어였고, ‘축하한다, 이제 모든 것은 당신들에게 달렸다’는 소련군의 포고문은 해방군의 언어였다. 극심한 반공냉전교육의 역효과로 이 위대한 ‘발견’은 청년학생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텍스트’는 분명 그랬다. 그러나 역사에서는 텍스트만이 아니라 ‘컨텍스트(맥락)’도 보아야 한다. 이번 역사전쟁을 불 지핀, 가장 편파적인 신문의 사시가 ‘불편부당’인 점이나, 일본이 조선을 집어삼킬 때 여러 번 조선은 독립국이라고 강조한 것을 보면 텍스트만 곧이곧대로 믿는 것이 얼마나 순진한 일인가를 알 수 있다. 미군은 점령군인 동시에 해방군이었고, 소련군은 해방군인 동시에 점령군이었다. ‘해방군’ 미군은 임시정부도 건국준비위원회도 인정하지 않았고, 친일파들이야말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 복무할 자들이라는 것을 냉정하게 계산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친일청산을 하지 못했다. 못한 정도가 아니라 친일청산을 주장하던 민족적 양심을 지닌 사람들이 저들에 의해 역청산되었다. 반민특위 습격, 국회 프락치 사건, 백범 암살로 이어지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 독립운동 경력을 가진 몇 분이 대한민국 첫 정부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지고지순한 역사란 있을 수 없다. 부모의 유산을 상속받을 때는 부채도 상속받아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과거‘청산’이란 말을 많이 써왔지만, 절대로 청산할 수도 없고, 지울 수도, 지워지지도 않는 것이 역사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지만, 우리 세대를 위해서나 다음 세대를 위해서나 잘못된 것을 그대로 두어서도 안 되는 것이 또한 역사이다. 역사는 매우 중요하지만 역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역사가 집약된 오늘이다. 친일청산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과제였지만, 오늘의 북한을 보면 친일청산을 잘했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김영삼 정권 이후 ‘역사바로세우기’란 말이 유행했다. 역사를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 실제로 대한민국의 역사는 민주화운동과 촛불항쟁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좌절당한 꿈이 되살아나는 벅찬 감동을 실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보수세력이 여전히 수구냉전적 역사인식에 빠져 있는 것은 답답한 일이지만, 친일 문제가 더 이상 그들의 아킬레스건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십수년간 나름 역사바로세우기에 혼신의 힘을 다한 처지에서 뒤늦게 깨달은 것은 역사바로세우기를 제대로 하려면 현실에서 대중들의 절박한 민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오늘이고, 민심은 천심이고, 대중들에게는 늘 밥이 하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