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2021.08.23 03:00 입력 2021.08.23 03:05 수정
김정수 시인

[詩想과 세상]처서

모래내 천변 오동가지에

맞댄 두 꽁무니를

포갠 두 날개로 가리고

사랑을 나누는 저녁 매미

단 하루

단 한사람

단 한번의 인생을 용서하며

제 노래에 제 귀가 타들어가며

벗은 옷자락을 걸어놓은

팔월도 저문 그믐

멀리 북북서진의 천둥소리

정끝별(1964~ )

입추 지나 처서가 되면 마음에 여유가 찾아든다. 따가운 햇볕도 누그러들고, 풀도 더는 자라지 않는다. 호미는 씻어 보관하고, 예리하게 벼린 낫으로 논두렁의 풀을 벤다. ‘포쇄’라 하여 여름 장마에 눅눅해진 옷이나 책을 햇볕에 널어 말린다. 처서에는 모기가 들어가고, 귀뚜라미가 나온다. 더 이상 열대야와 모기 때문에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처서 밑에는 까마귀 대가리가 벗어진다’는 속담처럼 초가을 햇볕의 기세가 만만찮다.

홍제천 저녁 산책에 나선 시인은 “모래내 천변 오동가지”에서 “사랑을 나누는” 매미 한쌍을 본다. 매미도 짝짓기는 부끄러운지라 “포갠 두 날개로 가”린다. 투명한 날개로 가려질 리 만무하다. “단 하루” 짝짓기한 매미는 나무 껍데기에 알을 낳고 일생을 마감한다. 한데 그곳이 하필 오동나무라니! 처서에 비가 오면 ‘십 리에 천 석 감한다’는 말이 있다. 처서에 오는 비는 피해가 극심하다는 뜻이다. 어쩌나, 올해는 “멀리 북북서진”하던 천둥소리가 가까워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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