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요지경

2021.11.11 03:00 입력 2021.11.11 03:03 수정

2년이 다 되어가는 코로나19 시대. 음악계는 말 그대로 위축되고 쪼그라들었다. 어둠과 빛은 공존한다. 작년 가을 무렵, 한 고급 오디오 취급 업체 사장을 만났다. “어려우시죠?”라는 질문에 그는 멈칫거리며 대답했다. “사실… 남들한테 미안해서 말은 못하는데 이쪽 시장은 엄청 호황이에요.”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많은 활동들이 중단됐다. 자영업자들이야 고난의 행군을 겪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금융자산의 가치는 폭등했다. 부동산, 주식, 가상통화… 가리지 않고 그랬다. 부동산으로 얼마를 벌었다더라, 비트코인으로 돈이 복사되는 체험을 했다더라… 이런 이야기들이 쉽게 들려왔다. 그런데 거리 두기로 인해 소비할 수 있는 대상이 대폭 줄어들었다. 번 돈이 많아진 사람, 원래 많이 벌던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 그 돈의 일부가 고급 오디오 시장으로 흘러든 모양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디오 시장이란 게 그리 크지 않아서 정확한 통계를 알 수는 없지만 체감은 할 수 있었다. 중고가 오디오를 주로 들여놓던 편집숍이 있다. 올봄 언젠가 그곳을 방문했다. 예전엔 거의 없던 하이엔드급 오디오가 즐비했다. 몇천만원대 세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최근 강남 못지않은 고급 주거지로 떠오르는 이 지역에 이사 오는 사람들이 몇천만원짜리 세트를 다이소에서 물건 사듯 구입한단다. 조금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지난여름, 오랫동안 살던 집을 떠나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공간이 바뀌고 늘어나면 욕심이 생기는 법. 오랫동안 사용했던 오디오 시스템에 눈이 돌아갔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중고 오디오 시장은 참으로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극소수의 영역이었던 턴테이블이 LP붐과 함께 활발히 거래되고 있었다.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무선 전송에 대한 수요도 커지고 블루투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와이파이 전송 기기도 쏟아져 나왔다. 나 역시 CD보다는 블루투스나 스마트 기기 직결을 통해서 주로 음악을 듣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 하지만 아직 생소한 세계. 공부해야 할 게 많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지식이 있고 검증된 영역부터 손대는 게 좋다. 앰프를 바꾸기로 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과거, 내가 강호를 누비던 시절 쉽게 구할 수 있던 매물들이 씨가 말랐다. 거래 이력들을 보니 제법 이름 있는, 적당한 가격의 중고 매물은 나오는 족족 마치 노른자위 아파트 청약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꾸준히 강호에 머물고 있던, 중고 오디오 시장 애널리스트급 환자에게 물어봤다. “코로나19 이후에 중고가 씨가 말랐어. 전통의 인기 매물은 당연하고, 그리 유명하지 않은 회사 것도 괜찮다는 평 있으면 바로 나가.” “이 바닥에도 큰손들이 많이 들어온 건가?” “아니, 사람들이 돈 쓸 곳이 없으니까 평범한 월급쟁이들도 많이 들어온 것 같아.” 오디오는 자동차 못지않게 감가상각이 심한 세계다. 포장만 뜯어도 ‘수업료’라는 이름으로 가격이 쭉쭉 빠진다. 재테크와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장이 활황이라니. 지난봄 고급 오디오숍에서 다이소 고객처럼 쇼핑을 한다는 이들을 보며 느꼈던 약간의 비현실감이, 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비록 이 시장 비슷한 것, 이 뜨거워지면서 원하는 매물을 원하는 가격에 구하기가 힘들어졌지만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좋은 소리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다는 얘기일 테니까. 나는 생각해왔다. 세상에 ‘막귀’란 없다고. 단지 좋은 소리를 경험할 기회가 그만큼 없었을 뿐이라고. 오디오에 처음 입문했을 때, 밖에서 술을 마시다가도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소리가 주는 황홀경이 자꾸 귀에 맴돌아서다. 이유야 어쨌든 이쪽에 입문한 이들, 즉 환자들이 늘어났다. 동병상련, 아니 동병상축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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