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공공재임이 자명하다

2021.11.15 03:00 입력 2021.11.15 03:03 수정

지난달,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판결문의 인터넷 열람제공 제도개선’을 사법부에 제안했다. 제안의 주요 내용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판결문의 확대 개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유사 사건 확인을 통해 불필요한 소송을 줄여 국민의 편익을 증진하고, 국민에 의한 적절한 감시가 가능하도록 하며, 전관예우 관행을 해소하여 사법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법조계는 판결문 확대 개방에 신중한 입장이다. 개인정보 등에 대한 유출 및 악용 우려가 있고, 변호사가 해야 하는 법률 사무를 인공지능이 법·제도를 교묘히 빠져나가 분석·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당사자의 내밀한 사실관계가 담긴 판결문 공개는 당사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판결문의 개인정보 비식별처리엔 양측 모두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현재 쟁점은 대략 세 가지다. 첫째, 판결문을 오래된 것도 공개할 것인지 아니면 최근 것만 공개할 것인지. 둘째, 판결문 열람수수료를 지금과 같이 부과할 것인지 아니면 수수료를 면제할 것인지. 끝으로 판결문을 지금처럼 PDF 등 이미지 자료로 개방할 것인지 아니면 컴퓨터가 정보를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판결문의 문자인식이 가능하도록 개방할 것인지다.

필자는 데이터의 분석 및 컨설팅을 위해 지방정부를 종종 방문하는데, 이 글을 쓰면서 오래전의 일화가 생각났다. 인사이동이 끝나면 가끔 발생하는 사례인데, 업무과정에서 만들어 놓은 데이터가 사라지는 일이 생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전에 일했던 사람이 데이터를 삭제하고 다른 부서로 간 경우인데, 컴퓨터에 있던 수많은 데이터를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혹시 보고서에 틀린 자료를 실수로 넣었다면, 이를 검증할 수 없도록 데이터를 지운다. 반대로 내가 힘들게 작업해서 만든 데이터인데, 이를 다른 사람이 활용해서 성과를 내는 것을 막고, 언젠가 다시 이전 부서로 돌아갈 수도 있어 아예 통째로 가져가는 경우다. 두 경우 모두 데이터가 공공재라는 인식이 부재한 사례다.

일화가 하나 더 있다. 담당 공무원과 데이터 분석가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과제 해결이 지지부진했다. 담당 공무원은 해결하려는 과제에 대한 이해 수준은 높았지만,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 확신이 없었다. 반면에 데이터 전문가는 데이터에 대한 이해 수준은 높았지만,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깊이 있게 정의해내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이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은 과제 이해도가 떨어졌고, 데이터 전문가는 데이터 분석 결과에 대한 확신을 잃었다. 결국 해당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과제 해결을 시작할 수 있었다.

두 집단이 같은 과제에 이견을 보일 때, 주권자 또는 소비자에게 물어보는 것도 방법인데, 국민 10명 중 8명이 판결문 공개 확대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눈에 띄었다(금태섭, 2018년). 선진국들은 판결문 개방을 확대하는 추세이다. 판결문의 확대 개방에 따른 국민과 사법부의 이익 외에도 법조계 종사자는 법률 서비스의 효율성과 품질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학계는 진일보한 판례 연구를 할 수 있다. 판결문은 공공재다. 데이터는 공유할수록 사회적 가치가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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