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남북관계 반성문

2021.12.14 03:00 입력 2021.12.14 10:27 수정

매년 이맘때면 남북관계와 관련된 정세 평가 및 전망과 관련된 글을 쓰게 된다. 연말에도 어김없이 이곳저곳에서 부탁받은 글 빚이 쌓여 있지만 뭘 써야 할지 난감하다. 최근 몇 년간 남북관계를 돌아보면 지나간 1년을 평가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일이다. 2019년 희망으로 가득 찼던 전망은 2018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평화를 맛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2020년과 2021년에도 희망의 끈을 내려놓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다음 해를 전망해 보았지만 더 큰 절망으로 돌아왔다. 이제 남북관계를 전망하기가 두렵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우리는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그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평화 롤러코스터에 올라탔다. 9월 평양에선 남북군사합의를 통해 남북의 주민들 삶 속에 전쟁의 공포가 사라진 새로운 평화의 시작을 알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시민들 앞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이야기했다. 지속 가능한 평화를 꿈꾸었고, 그리되리라 믿었다. 행복했던 평화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남북관계 위기가 찾아왔다. “우리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말처럼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남북관계 위기가 찾아왔다.

현재진행형인 한반도 위기는 과거의 반복이자 데자뷔(deja vu)이다. 2020년 6월엔 북측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군사행동 계획까지 발표했다. 북측이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했지만 다시 서해 우리 국민 피격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2021년 3월15일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문제 삼아 김여정 부부장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교류협력기구들도 없애버리는 문제와 함께 남북군사분야 합의서 파기를 언급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최악으로 치달을 것만 같았던 남북관계는 13개월 만에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되면서 한숨을 돌리는 듯했다. 반대로 금방이라도 남북정상이 만나게 될 것인 양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그 기대와 희망이 사라지는 데에는 2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미연합훈련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남북 통신연락선은 다시 끊어졌다.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과연 긍정적 화답으로 해석해야 할지도 의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통신연락선도 다시 연결되었지만 그것이 전부인 듯하다. 오히려 남북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군비증강에 열을 올리면서 한쪽은 도발이라고 하고 또 다른 한쪽은 이중기준이라고 이야기하는 상황이다.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고 있다.

한번은 소셜미디어에 북한이 쏜 미사일에 대해 ‘극초음속 활공체’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더니 “너무 나갔습니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다음날 아침 북한 매체가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라고 보도했다. 전날의 댓글 아래 동일인이 사과의 말과 함께 “이 댓글은 앞으로 업무와 공부에 있어서 거울로 삼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오히려 나를 되돌아보고 반성할 용기를 잃지 않게끔 해 준 글이다. 3번의 정상회담과 2번의 북·미회담을 성사시킨 이번 정부가 남북관계에 잘한 것이 많고 잘못한 것은 없는 소위 무오류성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결국 반성할 일이 없으니 정상 간 약속을 실천할 용기도 없다. 반성 없는 기대와 희망이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고 위기를 키웠던 것이 아닐까?

얼마 전 딸에게 반성문을 써오라고 했다. 딸은 아무 말 없이 장문의 반성문을 써왔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며 시작한 반성문은 어느새 아빠에 대한 서운함으로 이어졌다. 결국 딸의 반성문은 나의 반성문이 되어버렸다. 반성을 뜻하는 영어 ‘reflection’에는 거울에 비친 상이나 반사, 반영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어원에 해당하는 라틴어 ‘reflexio’도 반사, 되돌림을 의미한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고 아이는 거울에 비친 부모 자신이다.

남과 북 역시 서로에게 거울이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다.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부분을 보여주는 자기반성의 거울이다. 과연 남과 북은 서로를 얼마나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북을 바로 보지 않고 남북관계의 미래를 기대와 희망만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근거 없는 희망론은 북한이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또 다른 근거 없는 부정론에서 출발한다. 남북관계 진전과 한반도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 북한 붕괴론이나 비핵화 불가론만큼이나 이젠 근거 없는 낙관론이 남북관계에 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본다. 청탁 받은 원고에 전망을 빼고 반성만 담아도 될지, 받아 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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