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혹은 프리미엄

2021.11.16 03:00 입력 2021.11.16 03:02 수정

1999년 6월 홍콩의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마 연평해전이 벌어졌던 날이었을 것이다. 당시 내가 해군장교였던 때문인지 한국에 전쟁 나는 게 아니냐며 걱정을 했다. 나는 평소와는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전쟁이 그렇게 쉽게 나는 것이 아니라며 안심시켰다. 그해 연말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는 옆에 있던 아시아 총책임자라는 한 외국인에게 얼마 전 도움을 준 해군장교라고 나를 소개했다. 그는 당시 내 말을 믿고 한국에 대한 투자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고 다른 회사들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며 “한국정부가 당신에게 훈장을 주어야 한다”고 엄지를 세웠다. 인사치렌 줄 알면서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때가 IMF 금융위기로부터 탈출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주가가 비슷한 수준의 외국기업의 주가에 비해 저평가되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반대로 BTS와 오징어 게임으로 대표되는 한류 덕분에 뜻하지 않은 호의를 경험하기도 한다. 코리아 프리미엄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실재하는지에 대해서 이견이 있지만 통상 남북 대치 상황에 따른 안보환경의 불안과 함께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환경에서 원인을 찾는다. 최근에는 외교 갈등으로 인한 무역 리스크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으로 보면서 오히려 남북관계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도외시한다. 분단 속 남북 간 군사적 위협은 이제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그저 일상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IMF 금융위기를 지나오면서 이미 오래전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것이라는 희망을 이야기해왔다. 기업의 지배구조 및 회계의 불투명성,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 경제적 요인들이 개선되면서 2000년 중반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N포세대가 되어버린 젊은이들에게 포기한 것을 찾아주기 위해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로 대표되는 한국판 뉴딜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 해법인지 궁금하다. 얼마 전에도 모 대선 후보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공정성 확보로 주식시장이 국민 자산형성의 기회가 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과연 다음 정부에선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단어가 사라질까?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기업의 주가나 가치의 저평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부정적인 면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경험한다. 자살률, 청년 실업률, 가계 부채 비율, 저출산 등이 우리 모두의 삶을 낮추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경제적 모순이 아니라 분단의 모순이자 트라우마의 결과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올 광복절 축사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공고하게 제도화하는 것이야말로 남과 북 모두에게 큰 이익이 된다”면서 “대한민국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떨쳐내고 섬나라에서 벗어나 대륙으로 연결될 때 누릴 수 있는 이익은 막대하다”고 강조했다. 지속 가능한 평화로 단단히 굳어 있지 않는 땅에는 그 어떠한 해법의 기둥도 세울 수 없다.

얼마 전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종전선언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되었다. 강의를 시작하며 첫 자료화면을 띄우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첫 화면은 문 대통령이 조종사 복장으로 공군기 조종석에 앉아 있는 모습과 김정은 위원장 역시 군복을 입고 회의를 주재하는 사진을 나란히 둔 것이 전부였다. 외국인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의도된 구성이었지만 마치 조롱처럼 느껴져 강의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 마음을 느꼈던지 강의를 마치고 나올 때 한 외국인이 자신이 가장 크게 웃은 듯해 미안하다며 말을 걸어왔다. 그는 강의를 듣고 한국이 왜 종전선언을 하려는지 이해하게 되었다면서도 여전히 진정성이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반문했다. 종전선언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에 지지와 교황의 방북을 요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군비경쟁을 하는 모습부터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종전선언의 간절함 속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뼈저리게 느낀다. 종전선언을 외치는 가운데 나는 불행히도 남북 최고지도자의 군복 입은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한반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지 프리미엄을 만들지는 두 사람의 말과 행동에 달려 있다. 사람들마다 생활방식이 다르고 세상을 보는 눈도 다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은 던지면서도 개개인마다 행동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지금 남과 북의 지도자가 그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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