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우기 워드간

명절에 아가씨들이 친척집에 가면 보통 듣는 소리 ‘언제 결혼할 거냐. 애인은 있느냐’ 요샌 그런 말도 안 한대. ‘결혼 같은 거 하지 마라’ 헉, 엄청 세다. 멸치 아가씨와 오징어 총각이 수산시장에서 사내연애를 오래 하고, 멸치 아가씨 집엘 찾아갔어. 근데 멸치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침. 이유는 오징어가 뼈대 없는 집안이라서. 구석기 시대 유머지만 오징어가 짠해서 생각할수록 눈물이 난다. 무용을 공부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부잣집 장로님 딸. 그냥 교회 친구들 몇 어울려 놀러간 것뿐인데, ‘설마 너희들 중에 내 딸이랑 사귀는 녀석이 있는 건 아니겠지?’ 대놓고 쌀쌀, 야박하게 대해설랑 얼른 나와버린 기억이 있다. 생각해보니 나이키도 안 신고, 꾀죄죄한 자취생 꼬락서니들이었다. 그 친군 뼈대 있는 사람을 만나 잘 살고 있는지….

명절이라고 동네에 없던 차가 보이곤 해. 맛있는 요리 냄새들이 담을 넘는다. 가스레인지용 가스통 배달을 부르는 집들이 있는데, 오토바이로 배달. 폭주족 생각이 나는군. 일본 폭주족이 사무라이 검을 싣고 달리는 걸 본 미국 폭주족이 부러워하자 일본 폭주족 왈 “놀라지 말고 들어. 한국에는 가스통을 싣고 달리는 폭주족이 있대.” 여기에 진짜 있다.

잡채 하나면 명절 분위기 업. 잡다, 잡학, 잡식, 잡담에다 맛난 잡채를 한 끼 보태면 잡의 완성이 된다. 잡채 없는 명절은 생각할 수 없지. 오징어는 불쌍하니까 넣지 말고, 뼈대 없는 당면을 넣고 비비는 잡채. 설날 특집으로 만들어 먹었다. 잡채에 시금치 꽁지가 노랗게 보이곤 했는데, 요샌 파프리카를 썰어 넣어. 붉고 푸르고 노랗고 오만가지 색이 다 보이는 음식. 각양각색, 모두 다른 맛과 다른 색. 프라이팬 안에서 한 덩어리로 변한 잡채.

북미 이로쿼이족 원주민 말에 ‘우기 워드간’이란 말이 있대. 영혼을 위한 음식이라는 뜻. 우기는 어린 나무, 워드간은 부싯돌이다. 둘이 만나 불이 되고 음식이 된다. 우기 워드간을 먹어야 행복해진다고 믿었다. 뼈대 없는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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