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의 멈춘 시간

너도나도 쓰다 보면 자리잡는 말들이 있다. 치킨과 맥주를 합쳐 부르는 ‘치맥’과, 4대강의 ‘녹조라떼’라는 말이 그렇다. 두 신조어는 한국적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말인데 치맥은 한류의 자부심이 은근히 밴 말이지만 ‘녹조라떼’는 어디 내놓기엔 부끄러운 말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지난 8일 낙동강과 금강 주변의 노지 재배 농산물에서 녹조가 품고 있는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4대강 사업의 환경 훼손은 ‘녹조라떼’라는 말에 응축되어 있고, 라떼는 우유가 들어간 음료로 농도가 진하다. 보로 막힌 4대강은 녹차 수준이 아니라 녹차라떼만큼이나 진하고 묵직하게 강을 뒤덮는다. 한강을 수계로 삼는 수도권에서 콸콸 잘 나오는 수돗물을 먹고 살다 보니 솔직히 남의 일 같았다. 생수 좀 그만 뽑고 수돗물을 식수로 쓰자는 말도 보탰었고, 그때마다 “낙동강 물을 마셔봤느냐?”라는 힐난을 듣기도 했다.

낙동강은 1991년 두산기업의 페놀방류 사건도 있었던 데다 주요 공단지역을 끼고 있어 지역 주민들의 수돗물 불신이 높은 지역이다. 그런데 이번에 낙동강과 금강 변의 물로 기른 쌀과 배추, 무에서 남세균까지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니 가슴이 철렁하다. 녹조의 독소가 작물에 축적되는 문제뿐만 아니라 공기 중에 독성 성분이 부유하여 퍼지는 에어로졸의 문제까지 함께 제기되면서 인근 주민들의 건강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농사는 강물에 기대어 짓는다. 시설재배 방식으로 많이 바뀌어 지하수를 끌어올려 짓는 농사가 많아졌어도 한국인의 주식인 쌀과 배추, 무, 양념채소는 여전히 노지 농사다. 그동안 4대강 공사로 막힌 강물에서 발생하는 녹조의 위해성에 문제 제기가 있어 왔고, 그때마다 정부는 녹조의 독성은 농산물에 축적되지 않으며, 수돗물은 고도의 정수처리 과정을 거치니 안심하라 했다. 2016년에는 ‘녹조란 무엇인가?’라는 배포용 자료집까지 만들었는데, 이 자료에는 녹조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 호주도 겪는 문제로 나온다. 또 한국의 녹조현상은 여름에 집중되는 계절적 요인이 크며, 산업과 생활에서 발생하는 폐수의 유입 문제까지 제기하고 있다. 여하튼 강의 녹조는 잘 관리되고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취지다. 이번 농작물에서 검출된 독소의 검출량도 WHO(세계보건기구)의 기준치를 넘지 않는다지만, ‘밥과 김치’라는 한국인의 기본 식단에서 한꺼번에 먹는 경우가 많으므로 안전 기준치를 넘을 공산이 크다. 지하수로 길러진 작물은 안전할 것 같지만 이도 확신하기 어렵다. 환경운동연합이 4대강 지역의 지하수를 검사한 결과 녹조의 독소가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이학적 지식이 얕은 내 소견에도 지구의 물이 서랍장 물건처럼 칸칸이 분리되는 것도 아니고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 당연히 4대강 유역의 지하수 문제도 자유로울 수는 없어 보인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낙동강이나 금강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안 먹겠다는 말도 나온다. 4대강 보 철거 문제에 해당 지역의 정치인들과 일부 농민들이 농업용수 확보 문제를 들어 반대를 해왔던 전적을 문제 삼아 자업자득이라는 정치적 비난도 더러 섞였다. 하지만 농민에겐 깨끗한 물로 농사지을 권리가 있고, 소비자에겐 안전하게 생산된 농산물을 먹을 권리가 있다. 처음부터 그 권리를 박살 낸 것이 4대강 사업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것도 생산자와 그 가족들이며, 이런 사태로 직접적인 피해도 농민들이 입는다. 그동안 괜찮다는 말로 문제를 덮어온 정부, 지역 발전의 논리로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인 정치인들, 집권당이 아닐 때 저질러진 일이라며 수수방관하던 ‘그때 그 사람들’이 이번 선거 유세차에 또 올라 어깨띠를 두르고 활보 중이다. 4대강도, 환경 정치의 시간도 꽉 막힌 채 이렇게 썩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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