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멈춰 섰다

택배 파업이 일단락됐다고 한다. 최근 들어 택배 보낼 일이 많은 나로서는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파업이 길어지며 관련 업체들의 상황이 전체적으로 어려워지는 중이었다. 배송기사님들의 코로나 확진과 자가격리에 배송이 지연되는 지역은 물론이고 접수가 중지되는 지역도 늘고 있었다. 택배를 보내기 전에 목적지까지 배송 인프라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전국을 오가며 배송해주는 분들이 계셨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내게는 파업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하얀색 열차에서 시작하는데, 열차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나는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독일을 가로질러 오스트리아로 가는 길이었는데, 기차가 어느 역에 멈춰 서더니 한참 동안 아무런 후속 조치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내방송도 없었고 승무원이 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지도 않았다. 친절한 서비스에 길들여진 한국인인 나는 그 상태로 40분 정도 지났을 즈음에 인내심을 잃고야 말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열차 안을 둘러보고 복도로 나가 상황을 살폈다. 잠시 뒤에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는데, 앞으로도 이 열차가 출발하는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말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즈음 독일에서는 전국적인 열차 파업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간 개념이 정확하기로 손꼽힌다던 독일인들의 성향이 무색하게 열차는 지연되기 일쑤였고, 독일인들마저 ‘독일도 좋은 시절 다 갔다’며 자조했다. 신속과 정확이 생명이어야 할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크게 불편을 겪었다. 그런데도 안내방송을 듣는 열차 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마침 내 옆자리에 앉은 한 중년 남성이 읽고 있던 신문을 덮으며 앞에 있는 일행과 대화를 나누었다. ‘파업하는 사람들 마음은 어떻겠냐’고 그가 물었고, 앞에 있는 사람은 ‘우리야 겨우 기다리는 것밖에 못해주니까’라고 답했다. 그 대화를 듣고 열차 안을 둘러보니 다급해 보이는 건 오로지 나뿐이었다. 열차는 1시간45분을 지연한 후에 출발했다. 열차 안의 누구도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그날 이후에도 독일에서는 수많은 파업이 있었고, 내가 탄 열차는 자주 지연되었으며, 나 말고도 많은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었지만, 나는 파업을 탓하며 고함을 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독일은 견고한 산업별 노조 체계를 오랫동안 공고히 지켜온 나라다. 기업 노조는 개별 파업이 가능하지 않고, 파업 권한을 가진 산업별 노조가 결정한 사항을 따른다. 파업의 규모가 큰 탓에 파업을 결정하기까지 거쳐야 할 단계도 많다. 기업들은 노사 간 합의를 우선시하는 노사 공동 결정제도를 운영의 기반으로 하고, 근로자평의회처럼 구성원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는 창구들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해결하기 때문에 파업 발생 확률은 애초에 낮다. 파업을 하는 경우에도 임금의 일정액을 보전하는 등 지켜야 할 규칙이 많다. 애초에 파업하기가 쉽지 않지만, 파업을 결단한 후에는 이해관계자에게 가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중시하는 공동체 의식 때문이다. 그 신념을 지키려는 것은 기업뿐만이 아니다. 내가 탔던 열차 안에서처럼, 사람들도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기꺼이 견뎌내주려 한다. 여러 고민 끝에 시작된 파업이라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은 묵묵히 기다리는 방법으로 지지를 보낸다.

물론 우리 기준에서 보면 독일은 훌륭한 서비스의 나라는 아닌 것 같다.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민첩하게 준비하는 데 부족함이 많고, 당연한 서비스에서도 친절을 바라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이것을 개선점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업을 대하는 마음도 그렇다. 그에 비한다면 신속하고 정확하며, 친절하기까지 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우리는 어떤가. 지체되는 협상에 손해배상 청구 같은 이해타산으로 불만을 대신한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았는가. 잦은 파업에 손가락질할 대상을 찾는 데 여념이 없었던 것은 아닌가. 마음 밑바닥에 깔린 것이 사회와 사람을 향한 무조건적인 불신은 아닌가.

적지 않은 외국인이 한국의 서비스에 매우 놀라워한다고 한다. 나 역시 감탄할 때가 많다. 한편 유럽은 어째서 더 빠른 방법을 알면서도 자꾸만 멈춰 서는지를 생각하는 일이 늘었다. 공생과 신뢰에 대한 그들의 오랜 고정관념은 운명공동체로서 한 사회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을 생각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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