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의 ‘달’을 봐라

2022.03.25 03:00 입력 2022.03.25 03:01 수정

최고경영자를 위한 ESG 리더십 과정을 운영한 지 1년 남짓 되었다. 세상이 어찌나 빨리 변하는지 수업 내용을 업데이트하기 바쁘다. 최근 사례만 몇 가지 들어보자.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지난 15일 유럽연합(EU) 의회 보도자료에 따르면 EU 27개 회원국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도입에 합의했다고 한다. 이는 탄소 배출 규제가 약한 국가가 강한 국가에 상품·서비스를 수출할 때 적용하는 관세로 사실상 추가 관세다.

EU는 2030년까지 1990년의 55% 수준으로 탄소를 줄이기 위해 역내 기업에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동일한 탄소 배출에도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해외 경쟁사들로부터 역내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2026년부터 매년 100억유로를 거둬들일 계획인데 탄소감축 목표도 달성하고, 후발주자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효과이자 동시에 새로운 수입원이기도 하니 그들 입장에선 환영하는 게 당연하다.

이뿐만 아니라 23일엔 EU 의회가 2만8000여개에 달하는 외국 기업에 유럽의 기업 지속 가능성 공시 규정(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을 적용하기로 결정하였다. EU 의회는 투자자들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기업의 공시밖에 없으니 자신들이 정한 기준에 따라 더 강력하고 명확하게 줄을 세우겠다는 뜻이다.

유럽뿐 아니다. 지난 21일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업의 탄소감축 현황은 물론 기후변화 대응 활동을 기업 공시에 포함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 위원회는 미국의 수사기관이다. 미국의 증시를 감시 감독하는 대통령 직속의 독립 관청으로 준사법적 권한까지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기업들에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직접 온실가스 배출량뿐 아니라 제품 생산용 에너지 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간접 배출량, 그리고 제품 공급망에 포함된 납품업체와 제품 사용 과정 중 발생하는 배출량까지 공시하게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탄소 배출은 이제 도망갈 구멍이 없다. 기후변화 대응을 저인망식으로 들여다보겠다는 금융당국의 규제를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 마침내 온 것이다.

미 증권거래위원회마저 환경단체의 입김이 상당하게 반영된 규제를 수용하기까지 폭염, 가뭄, 한파, 산불 등 기후재난으로 인한 큰 손실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3월 초 강원도 동해안 산불로 서울시 면적의 40%가 소실되었다. 이 유례없는 산불의 이름 또한 기후재난이다.

산불 현장을 돌아보고 와서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집 <윤석열 노믹스>를 읽어보았다.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이라는 제목하에 ‘현실적인’ 2050 탄소중립 방안으로 원전 회귀가 강조되고 있다. 전 정부에 대한 반격으로 선거 캠페인에서는 원전만 옹호하는 것처럼 강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세계 속의 대한민국호를 이끌 수장으로서 엄혹한 글로벌 규제의 파고를 넘으려면 경제발전을 위한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매우 정교하게 갖춰야 할 때이다. 탄소감축을 위한 신기술, 위험요소가 없는 신에너지, 거기에 시장도 있고 미래도 있다. 달을 봐야지 손가락을 가지고 다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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