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카데미 회원이라면

2022.04.07 03:00 입력 2022.04.07 03:02 수정

영화 <코다>의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영화 <코다>의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내가 오스카상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이라면, 영화 만들기와 보기의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 일본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 ‘소신 투표’할지, 서부극 역사에서 돌출된 지위를 획득한 <파워 오브 도그>에 ‘추종 투표’할지 끝까지 고민했을 것이다.

백승찬 문화부 차장

백승찬 문화부 차장

실제 아카데미 회원들의 선택은 달랐다. 지난주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유력한 후보들을 제치고 작품상을 받은 것은 <코다>였다. <코다>는 엄마, 아빠, 오빠가 농인인 가족에서 성장한 청인 소녀 루비의 이야기를 그렸다. 루비는 우연히 들어간 합창단에서 노래 재능을 발견하고 음대 진학을 권유받는다. 가족은 루비 없이는 세상과 소통하기 어렵다. 루비는 꿈을 찾아 떠날지, 가족 곁에 머물지 고민한다.

작품의 완성도만을 놓고 봤을 때 <코다>가 <파워 오브 도그>나 <드라이브 마이 카>보다 빼어난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리코리쉬 피자>나 <듄>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아카데미는 종종 걸작을 두고 ‘볼 만한 영화’에 작품상을 주는 경우가 있었다. <성난 황소> 대신 <보통 사람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대신 <셰익스피어 인 러브>, <브로크백 마운틴> 대신 <크래쉬>가 작품상을 받아 지금까지도 입방아에 오른다.

최근 아카데미에는 영화의 내적 가치 못지않게 외적 의미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백인들이 상을 주고받는 데 대한 반발이 ‘#오스카소화이트’(오스카는 너무 하얗다) 운동으로 가시화됐고, 상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오스카는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기생충>이나 <미나리>의 윤여정은 그 수혜자였다. 올해도 문화적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을 두루 고려한 듯한 수상 결과가 나왔다. 회원들의 임의적 투표가 아니라, 누군가의 철저한 계획에 의한 듯한 결과였다.

<코다>의 수상은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코다>는 2014년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의 리메이크이다. 원작에서는 청인 배우들이 수어를 배워 농인 역할을 했지만 <코다>에서는 실제 농인 배우가 농인 역할을 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흉내 내 연기하는 ‘크리핑 업’에 대한 반발이 <코다> 캐스팅에 녹아있다. 이 영화에서 아빠 역할을 한 트로이 코처는 농인 배우로는 역대 두번째로 오스카 연기상을 받았다. 첫번째는 1987년 <작은 신의 아이들>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말리 매틀린이었는데, 매틀린 역시 <코다>에 엄마 역할로 나왔다.

<코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루비의 학교 공연 장면이다. 여느 음악영화에서라면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코다>는 루비의 노래를 아름답게 담아내는 대신, 농인 가족의 입장에서 공연을 본다. 즉 순식간에 노래가 사라지고 적막 속에 루비의 몸동작과 입모양만 카메라에 담는다.

이번 오스카는 장애인뿐 아니라 여러 소수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응원했다. 제인 캠피언이 <파워 오브 도그>로 감독상을 받음으로써, 지난해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에 이어 2년 연속 여성 감독상 수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오스카 역사상 처음이다. <코다>의 감독 션 헤이더 역시 여성이다. <타미 페이의 눈>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제시카 채스테인은 수상소감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실존 인물인 타미 페이는 미국의 종교방송 네트워크에서 활약한 선교사였다. 그는 남편과 함께 센세이셔널하면서 현세적인 선교 방식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성소수자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한 인물이기도 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아리아나 드보스는 커밍아웃한 성소수자·유색인종으로서는 첫 연기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윌 스미스의 크리스 록에 대한 폭력은 수상 결과에 담긴 세심한 의미들을 파묻었다. 미국에서는 즉각적으로 스미스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 여론이 일었던 반면, 한국에서는 “록이 맞을 짓 했다”는 의견도 꽤 나왔다는 점은 당황스러웠다.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핑킷의 병력에 대한 록의 농담이 지나쳤다 해도 마찬가지다. 많은 가정폭력, 학교폭력이 ‘맞을 짓’이었다는 명분 아래 일어난다. 록의 농담의 적절성 여부, 문화적 의미를 논의하는 건 “세상에 ‘맞을 짓’은 없다”는 원칙에 합의한 사람들끼리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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