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쇼핑몰은 ‘광주 정신’을 훼손하는가?

[강준만의 화이부동] 복합쇼핑몰은 ‘광주 정신’을 훼손하는가?

지난 대선 기간 중 광주에서 복합쇼핑몰 유치가 선거 쟁점으로 부각되었을 때 나는 착잡했다. 5년 전인 2017년 내가 사는 전주에서 비슷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 나는 그간 내가 갖고 있던 복합쇼핑몰 반대 입장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나는 전통시장 상인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내 주변엔 찬성파가 더 많았다. 나는 젊은 대학생들의 생각은 좀 다를까 싶어 수업 중에, 그리고 개인적으로 학생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놀랍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쇼핑몰 유치에 반대하는 학생보다는 찬성하는 학생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그들은 쇼핑몰을 소비공간인 동시에 문화공간으로 여겼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부지런히 검색을 하면서 관련 논문들까지 찾아 읽었다.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논란이 있었는데, 지역 내 여론조사상으론 어느 곳이건 찬성파가 훨씬 더 많았다. 광주의 경우도 2021년 7월에 실시한 무등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광주시가 창고형 할인마트나 복합쇼핑몰을 유치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58%가 ‘적극 유치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20대와 30대에서는 ‘적극 유치’ 입장이 각각 72.3%, 77.4%로 높게 나타났다.

나는 이게 세대 차이를 수반하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2030세대가 복합쇼핑몰 유치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공동체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일상적 삶에서의 실용주의를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있어서 세대 차이가 크다는 걸 말해준 게 아니었을까?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광주 정신’을 내세워 복합쇼핑몰 유치에 반대하고 나섰다. 민주당 선대위 산하 을(乙)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는 2월16일 ‘소상공인·자영업자 피눈물 흘리게 하는 복합쇼핑몰 유치가 광주발전 공약인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명백히 지역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상생과 연대의 광주 정신을 훼손해 표를 얻겠다는 알량한 계략”이라고 비난했다.

‘광주정신이면 다 돼’란 접근은 위험

민주당 의원 조오섭(광주 북구갑)은 2월22일 ‘이준석 대표는 광주를 고립시키지 마십시오’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에서 “전두환은 1980년 5월 탱크와 군홧발로 광주를 고립시켰다. 이 대표는 ‘낙후’와 ‘가난’이라는 거짓 프레임으로 광주를 고립시키고 있다”며 “광주를 타 시·도와 갈라치고 고립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일베’의 방식”이라고 비난했다. 또 그는 “정치를 일베식 게임 정도로 여기며 국민을 자신이 가지고 노는 게임 속 캐릭터처럼 취급하는 알량한 제1야당 대표의 장난질에 놀아날 광주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광주시민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했을까? 민주당 광주시당이 대선 후인 3월18일부터 20일까지 광주시민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패널조사와 표적집단 면접조사를 실시한 후 발행한 ‘대선 이후 광주 민심 조사’ 종합결과 보고서 내용이 흥미로웠다.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은 대선 때 광주지역 공약으로 ‘미래명품 재래시장’을 제시했지만, 광주시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중소상인 보호, 전통시장 활성화’를 꼽은 응답자는 2.8%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보고서에서 “복합쇼핑몰에 대한 지지 의견이 높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광주시민들은 광주의 민주화 정신과 복합쇼핑몰 유치가 상충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고, ‘왜 광주만 안 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상당해 전향적 자세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물론 아직도 여전히 반대의 목소리는 있지만, 지난 4월8일 광주시 민관협치협의회는 복합쇼핑몰 유치와 관련한 시민 의견 수렴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해 시에 제안하기로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광주의 청년 세대가 지역 정치권이 ‘광주 정신’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강한 반감을 보인 건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그들은 최소한의 시장 논리마저 5·18로 상징되는 ‘광주 정신’ 앞에서 무력화되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꼈거나, 민주당이 5·18과 광주 정신이면 광주는 다 된다는 듯한 접근법을 보이는 것에 분노했다.

민주당은 앞으론 광주의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해 그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광주 정신’ 운운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건 합리적인 논의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광주시민들이 있다면, 나는 그분들께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다.

“광주에서 성역이 없는 내부비판의 자유는 보장되고 있나요?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의 문화가 살아 있나요? 지난 대선에서 특정 정당 후보에게 84.8%의 표를 몰아준 ‘몰표의 전통’을 계속 지켜나가는 게 ‘광주 정신’일까요? 문재인 정권이 어이없는 실정을 저질렀을 때엔 여론조사를 통해서나마 따끔한 회초리를 들어 성찰과 자기 교정을 압박했어야 하지 않나요? 어떤 일이 벌어지건 문재인 정권에게 맹목적 지지를 보낸 게 정녕 잘한 일이었을까요? 문재인 정권의 실패에 광주가 져야 할 책임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2030세대는 왜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지 그걸 이해해보려는 자세를 가져보는 것도 꼭 필요하다. <K를 생각한다: 90년대생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저자인 임명묵은 “복합쇼핑몰은 ‘내가 바로 어제 다녀온 서울에서, 내가 당장 휴대전화를 켜면 보이는 게시글에서’ 볼 수 있는 너무나 익숙한 대상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사실 이들의 마음에 정말 불을 지핀 것은 서울이 아니었다. 서울은 어차피 ‘특별’한 공간이니, 서울과의 격차 자체는 본질적 문제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광주와 ‘같은 급’인 다른 광역시들이 광주보다 훨씬 빠르게 새로운 유행을 수용하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대구가 가능하고, 대전이 가능하다면 광주가 불가능할 이유는 무엇이 있겠는가?”

청년에 ‘낭만적 공동체’ 강요 안 돼

대구·대전은 가능해도 광주는 안 된다는 게 ‘광주 정신’이라는 건 광주가 그만큼 ‘상생과 연대’를 소중히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복합쇼핑몰 유치에 찬성한다고 해서 지역 중소상인들에 대한 배려나 상생·연대의식이 없는 이기주의자로 보는 시각이다. 실제로 이런 시각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청년들이 그런 광주를 답답하게 여겨 떠난다면 어쩔 것인가? 혹 ‘광주 정신’이 이른바 ‘낭만적 공동체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임명묵이 잘 지적한 것처럼, “소비와 문화, 나아가 삶의 방식 전체가 바뀌고 있는 지금, 지역은 청년들이 빠져나가 활기를 잃은 채 쇠퇴할 것인가, 아니면 서울과의 동시성 속에서 새로운 문화적 모색을 통해 도약의 기회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젠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모종린이 수년째 역설해 온 ‘골목길 경제학’에 주목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는 “요새 젊은 사람들은 나다움, 동네다움을 추구하고 자기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에 동네 브랜드를 어떻게든 밀어주고 싶어한다”며 “동네다움을 갖춘 로컬 브랜드는 대기업도 건드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로컬 브랜드가 잘되려면 대기업은 경쟁자가 되는 대신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하고, 지자체와 정치권은 읍·면·동 단위의 상권 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창업 지원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모종린이 지난 7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합류함으로써 기업이 소상공인과 상생하는 방향으로 광주 복합쇼핑몰을 유치하는 전략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졌다. ‘상생과 연대’를 실천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방법만 존재한다고 믿는 도그마를 깨는 건 아닐까?

나 역시 누구 못지않게 낭만적 공동체주의의 이상에 강하게 끌리는 세대에 속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그걸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낭만적 공동체주의를 실천하면서 사는 게 문제될 건 전혀 없다. 아니 오히려 장려하면서 칭송할 일이다. 문제는 공적 영역에서 그걸 너무 낡았다고 생각하는 세대와의 소통과 상호이해다. 중소상인들의 생존을 위한 대책과 아이디어 개발이 시늉에 그치지 않고 성과를 낼 수 있는 혁신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2030세대가 지역에서 많이 활동해야 그런 혁신도 가능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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