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트랜스젠더들, 참 건강하다

트랜스젠더에 대해 쓴 지난 칼럼을 보고 누가 물었다. 한국에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젠더퀴어)가 적어도 10만명에서 20만명은 있을 것이라 썼더니,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고 한다. 맞다. 나도 잘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조사한 적이 없으니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외국의 조사 자료들이라고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니겠지만 트랜스젠더 인구수를 추정하는 데 이용할 정도는 되겠다. 이런 외국 자료들, 그리고 내가 실제로 진료실에서 만나고 있는 전국 각지에서 내원한 트랜스젠더들을 만나며 추정한 인구수를 나는 말했을 뿐이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트랜스젠더들의 암 발병이 더 많을지 누가 물었다. 외국 자료를 보면 트랜스젠더들의 암 발병이 많은데, 한국에서도 그럴까 질문했다. 암 발병이 트랜스젠더에서 더 많다면, 트랜스젠더들의 건강 상태가 더 안 좋다는 얘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지 조사하고, 어떻게 하면 건강을 증진할 수 있을지 논의를 시작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암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많이 걸린다. 그러면 나이 들어가는 트랜스젠더의 건강 상태를 추적관찰하며 암 발병이 더 많은지 지켜봐야 하는데, 나이 든 트랜스젠더는 이미 성확정 수술을 거친 후 법원의 성별정정 판결을 받아 주민등록번호까지 바뀌어 트랜스젠더로서 통계에 잡힐 가능성이 낮을 수도 있다.

통계에서 확인된다 하더라도 암 발병만 따진다면 오히려 낮을 수도 있다. 트랜스남성의 경우 성별정정을 위해 유선절제술, 자궁난소적출술을 받은 상태일 가능성이 높으니, 여성의 주민등록번호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유방암,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암, 난소암 등의 발병이 적을 것이요, 남성의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다면 전립선이 없으니 전립선암의 발병이 전혀 없을 것이다. 트랜스여성의 경우에도 유방암의 위험성이 있다고는 하더라도 비트랜스젠더(시스젠더) 여성들보다 낮을 것이며, 자궁과 난소가 없으니 여성의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자궁난소 계통의 암 발병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암 진단을 적절히 받고 있을 것인가의 문제도 남아 있다. 진료실을 찾는 트랜스젠더들은 대부분 호르몬 치료를 위해 오지만, 간혹 다른 증상으로 내원하시는 분들도 있다. 두통, 복통, 소화불량, 혹은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급·만성 질환으로, 지하철을 갈아타고 1시간 걸리는 거리의 의료기관을 찾는 것이다. 주변 병원을 찾았을 때 “본인이 맞으세요?”라든가, “여자예요, 남자예요?” “여자 맞아요?”와 같은 질문을 수없이 들었던 경험이 있는 분들은, 트랜스젠더임을 스스로 밝히고 진료를 편하게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을 찾기 때문이다. 혹은 웬만한 증상들은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고 참고 견디고 만다. 견디다 보면 급성 질환의 증상은 사라지게 되기도 하니까.

나는 트랜스젠더들의 국가 건강검진의 수검률이 낮지 않을까 걱정된다. 당장에 남녀로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검진기관의 탈의실이나 화장실을 이용하며 옷을 갈아입고 검체를 채취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데다, 검진결과를 보고 누군가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알아보지 않을까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검진을 덜 받아 암이 덜 발견되면 어쩌지?

트랜스젠더들이 더 아픈지를 확인하기 위해 건강보험료를 더 쓰는지를 보는 건? 안타깝게도 현재 트랜스젠더들에게 필요한 호르몬 치료와 성확정을 위한 수술 모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지라, 어마어마한 병원비를 쓰면서도 건강보험의 지원은 전혀 받을 수가 없으니 건강보험 통계에도 잡히지 않으리라.

암이 생길지도 모를 장기를 다 잘라냈으니 암에 덜 걸리고, 암을 조기에 발견할 건강검진을 덜 받아 암 진단이 줄어들고, 어느 치료 하나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어 건강보험료를 적게 쓰고. 한국의 트랜스젠더들 참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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