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얼마나 중요할까

2023.01.31 03:00 입력 2023.01.31 03:05 수정

돈은 얼마나 중요한가? 직업 또는 직장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월급이 얼마나 중요하냐는 질문이다. 당연히, 단연코, 최고로 중요하지 뭘 묻느냐고 대부분은 답할 것이다. 여기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내 질문은 그래서 ‘얼마나’ 중요하냐는 것이다.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안정성과 안전, 존중, 재미와 보람, 성장, 워라밸을 기대할 수 없는 일이어도 월급만 확실히 높으면 상관없을까? 여전히 ‘그렇다’고 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지방 공공의료원에서 연봉 3억6000만원을 제시하고도 의사 채용을 못한 일이 알려지자 “의사들이 돈만 밝힌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얼마 후 MBC가 후속 보도를 했다. 면접을 봤던 의사가 “도저히 일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고 제보한 것이다. 비상식적으로 과도한 일을 맡길뿐더러 사고가 나면 개인이 책임지도록 하는 조건이었단다. ‘돈만 밝혀서’가 아니라 ‘돈만 밝힐 수 없어서’ 기피된 일자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업 등 제조업 현장에서도 사람을 못 구한다고 난리다. “취업 즉시 1000만원”을 내걸어도 채용이 안 된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런 기사들 대부분은 전문가의 입을 빌려 “주 52시간제 완화”를 주장한다. 장시간 근로를 통해서 돈을 더 벌게 해줘야 구인난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돈이 그렇게 중요한가? 돈 말고 다른 조건이 문제라는 생각은 도저히 할 수 없는가?

2년 전, 20대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복합적인 방식의 조사인 ‘랩 실험’을 했다. 먼저 가상의 구인광고 속 다양한 근로조건들을 읽어본 뒤에 가장 마음에 드는 조건을 고르도록 했다. 이렇게 고른 조건을 ‘높은 연봉’이라는 조건과 비교한 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기회를 줬더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연봉이 아닌 쪽을 택했다. 가장 많이 선택된 조건은 자신의 일하는 방식과 시간, 장소를 스스로 정할 권한, 즉 ‘통제권’이었다. 발전 가능성, 윤리적인 문화, 직장의 위치 등을 중요하게 선택한 사람들도 있었다.

연봉을 택한 사람들도 돈 자체를 중시하는 게 아니었다. 한국사회에서 임금 높은 일자리는 다른 모든 조건에서도 뛰어난 경우가 많다. 사회적 인정 수준도 높다. 이 때문에 일단은 “거기서 일할 만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획득하고 나서”, 또는 “몇 년 바짝 돈을 벌어 놓고 나서” 진짜 원하는 일자리로 이직하겠다고 답한 사람이 많았다.

예외적인 상황은 있다. 몇몇 응답자들은 “부양 가족이 있다면 다를 수 있다”고 했다. 지금 구인난을 겪는 일자리들을 지금껏 지탱해 온 사람들이 바로 이런 경우일 것이다. 근면성실한 가장들의 희생과 노고는 높이 평가되어야 하나, 이를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이들도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었다. 일하다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호해주는 조직과 제도하에서 안심하고 일할 권리도 있었다.

기성세대가 일해온 것을 지켜보면서 다르게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가 바로 저 ‘구인난’ 현상이다. 기록적으로 낮은 출생률의 일정 부분도 이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다시 묻고 싶은 것이다. ‘52시간 노동제’가 문제라는 이들에게 말이다. 돈이 그렇게 중요한가? 아니, 돈만 그렇게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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