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공약, 두 가지 공통점

22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공보물을 살펴보았다. ‘10대 공약’과 같은 주요 정책 방안에 두 가지 공약이 공통적으로 들어 있었다. 하나는 ‘공공돌봄 확대’로, 주요 정당의 공약마다 예외 없이 들어가 있다. 다른 하나는 일하는 사람의 처우와 권리를 높이는 공약이다. 더불어민주연합은 ‘일하는 사람의 권리 보장’, 녹색정의당은 ‘일하는 시민의 기본법 제정’, 새로운미래는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기본법 제정’으로 이름도 비슷하다. 국민의미래가 제시한 ‘중소기업 근로환경 개선’ 역시 중소기업 종사자가 전체 임금근로자의 80%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비슷한 맥락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 두 가지를 중요한 정책 과제로 여긴다는 점을 깨달았을 때, 문득 얼마 전 읽은 책이 떠올랐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로, 교사이자 연구자인 저자가 8명의 빈곤 청소년을 3~4년 주기로 10년간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이론과 통계 분석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 현상을 구체적으로 보게 될 것이라 기대했다. 실제로 책에 기록된 8명의 삶 속엔 빈곤의 대물림 구조, 교육 과정에서 제 역량을 펼치지 못하고 급하게 나쁜 일자리로 빠져드는 문제, 한 번 진입한 저임금 일자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문제들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더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다른 측면이었다. 이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 국가와 제도의 역할이 분명 있기는 있었다는 점이다. 기초생활수급제와 공공임대주택, 국가장학금 제도가 삶의 바탕에 깔려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 중요한 버팀목이 돼준 역할이 있었다. 종합사회복지관과 지역아동센터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런 역할을 했다. 학교는 빠져도 지역아동센터에는 매일 나간 아이들은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돌봄을 그곳에서 처음 경험했다. 어려서 인연을 맺은 사회복지사 ‘쌤’들은 취업해 직장에 다닐 때도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이었다. 세상이 두렵고 무기력해졌을 때는 복지시설에서 만난 상담사 선생님에게서 힘을 얻었다. 8명의 삶 곳곳에 이런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제도의 존재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기울여 상대를 대해야만 가능하다. 사실 사회복지사와 지역아동센터 종사자 상당수의 임금은 최저임금과 별 차이 없을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정부 예산이 들쭉날쭉이라 고용도 불안정하고, 운영비가 모자라 쩔쩔맬 때도 많다. 이런 여건에서 일하는데도 ‘마음을 기울이기’까지 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많은 가난한 아이들이 무사히 자라온 것이다.

주요 정당들의 총선 공약에 공공돌봄 확대와 일하는 사람의 처우와 권리를 위한 공약이 나란히 들어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본다. 두 공약의 교집합에 대해 정당들은 생각해봤을까? 공공복지 확대를 외치면서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대우할 생각은 안 했다면, 이들에게 더 많은 일을 떠맡기는 식으로 ‘확대’를 하겠다는 거라면 사회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기만 할 뿐이라는 점을 이제라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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