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2023.02.20 03:00 입력 2023.02.20 03:03 수정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던 잔소리다. 부모님에게 듣기도 하고, 언젠가부터는 스스로에게 하기도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내일로 미루지 않고 할 일을 다 했을 때는 뿌듯함마저 느낀다. “미래의 나에게 짐을 넘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셀프 칭찬’도 한다.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지난달 27일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시험계산) 결과가 공개된 이후 한국 사회에서 국민연금 개혁에 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오늘 할 일을 오늘 할’ 기회가 5년 만에 다시 왔다. “2041년에는 ‘적자로 전환’하고 2055년에는 기금이 소진될 것”이란 구체적인, 또 충격적인 결과를 접하고 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2041년까지 앞으로 18년, 2055년까지는 32년 남았다.

지난해 활동을 시작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의 논의에도 속도가 붙었다.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5%로 인상하고, 40%대인 소득대체율도 조정한다는 구체적인 ‘모수개혁’안이 흘러나왔다. 보험료율 인상에는 합의가 이뤄졌고, 소득대체율에만 이견이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어쨌든 올해 안에는 그 어렵다는 국민연금 개혁의 틀이 잡힐 것 같았다.

지난 8일 국회 연금특위가 달아오르던 연금개혁 논의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여야 간사들이 ‘얼마만큼 더 내고 얼마를 받을 것이냐’에 집중됐던 논의를 멈춰세우고 기초연금,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 전반의 구조개혁안부터 짜겠다고 ‘선언’했다.

국회 밖 전문가들도 구조개혁이라는 큰 틀을 바꿔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번 방향 전환을 두고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야 모두 그동안 당 차원의 연금개혁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민간자문위원회만 바라보다 갑자기 구조개혁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인기 없는 정책을 뒤로 미루려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도 떠오른다.

구조개혁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갑자기 방향을 틀다가는 연금개혁 논의 전체가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당장 오는 4월로 예정됐던 연금특위 활동 기한이 연장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연금과 연계된 다른 연금개혁 일정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5년 전에도 국민연금 개혁은 초안까지 만들어졌다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2018년 11월7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국민연금 개혁안을 보고받은 뒤 “국민이 생각하는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며 이를 반려했다. 당시 복지부는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공청회에서 개혁안을 공개하고 이를 국회에 제출하는 일정까지 짜놓았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모든 계획이 출발선으로 돌아갔다. 2018년 11월은 대통령 지지율이 가장 높은 취임 첫해였다. 이때도 하지 못한 국민연금 개혁은 문재인 정부 내내 다시 사회적 의제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국민연금 개혁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세대별, 소득구간별, 성별 등으로 이해관계가 달라지니 사회 전체가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1988년 국민연금이 출범한 이후 35년간 ‘지속 가능성’에 관한 의문이 끊임없이 따라다녔지만 제도 개혁은 딱 두 차례만 이뤄졌다. 그래도 이를 추진한 정부가, 동의한 국회가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수급 개시 연령을 60세에서 5년마다 한 살씩 2033년 65세까지 늦추는 1차 제도 개혁을 시행했다. 노무현 정부는 보험료율은 건드리지 못했지만 소득대체율만이라도 2028년까지 40%로 인하하는 결정을 내렸다.

국민연금 개혁 필요성은 그때보다 더 커졌다. 저출생·고령화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빨라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이번 정부 말기나 다음 정부 초기에는 앞으로 수십년간 지속할 수 있는 연금개혁 완성판이 나오도록 지금부터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연금개혁 의지를 밝혔다.

지난달 27일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전병목 위원장은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금 소진 시점의 차이는 5년 전에 개혁을 연기한 비용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말했다. 지난 5년만 탓할 일일까. 이제 정부도, 국회도 초등학생 시절의 그 잔소리를 다시 떠올릴 때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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