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폭과 ‘핵관의 힘’

2023.02.27 03:00 입력 2023.02.27 03:02 수정

지난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노란봉투법 제정의 시급함은 여러 안타까운 소식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2002년 두산중공업이 6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조합비와 임금, 살던 집까지 가압류당한 노조 간부 배달호씨가 목숨을 끊었다. 2011년에도 한진중공업이 158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노조 조직차장 최강서씨가 극단의 선택을 했다. 2014년 쌍용차 파업 참가 노동자들에게도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졌고, 이로 인해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제한하는 법 제정을 위해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 운동이 벌어졌다. 노란봉투법은 19·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서도 임기 종료 1년을 앞두고서야 간신히 환노위를 통과했다. 모금 운동이 시작된 지 10년 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환노위가 근무 태만으로 비난받을 일이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런데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 당시에도 항의하다 퇴장한 데 이어 “더 늦기 전에 노란봉투법을 멈춰라”라고 촉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게다가 한 의원은 “현장에서의 노사 갈등과 불법 파업을 조장함은 물론 국가 경제에 끼칠 심대한 폐단과 사회적 악영향이 불 보듯 뻔하다”는 터무니없는 논리를 폈다. 노조가 국가 경제를 망친다고 악마화하는 대통령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던 날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아직도 건설 현장에서는 기득권 강성 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 같은 불법 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며 엄정 조치를 지시했다. 건설노조를 조폭에 비유해 ‘건폭’으로 지칭하기까지 했다. 국민의힘이 대통령의 논리를 반복하듯 검경은 곧바로 특별수사단을 출범시켰다. 윤폭이 깃발을 들자 검폭, 경폭과 당폭이 부리나케 튀어나가는 꼴이다.

윤 대통령의 노조 공격은 노조 회계의 투명성 강화를 명분으로 회계 장부 제출을 요구한 데에서 이미 시작됐다. 고용노동부 장관과 국토교통부 장관도 곧바로 과태료 부과, 정부 보조금 제외, 조합비 세액공제 원점 재검토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압박했다. 불법 행위가 있으면 그 사안에 대해 법에 따라 수사하고 처벌하면 된다. 노조 전체를 공공의 적으로 돌려 바람몰이를 하는 것이 정부의 수장으로서 할 일인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이 정상화된다면 기업 가치도 올라가고, 우리 자본 시장도 엄청나게 발전할 것.” “공정한 경쟁을 통해 노조는 노조답고, 사업주는 사업주답게 제대로 된 시장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게 우리가 올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최근 노조와 관련해 윤 대통령이 한 말들이다. “노조의 정상화” “공정한 경쟁” “노조답고” “사업주답게”라는 말들은 그 자체로 좋은 말이다. 그러나 남의 말을 인용하려면 전체 맥락을 봐야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이어진 발언은 “국가가 더 이상 노조에 물러서면 기업은 어떻게 되고 경제는 어떻게 되느냐” “기업인들이 지금 우리 정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명백하다. 윤석열 정부의 국가는 노조로부터 기업을 보호한다. 정상, 공정, 다움의 기준이 사업주의 이익을 따르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제 다시 해석해 보면, ‘노조의 정상화’는 ‘노조의 무력화’로, ‘공정한 경쟁’은 ‘사업주에 유리한 경쟁’으로 읽힌다. ‘노조답고, 사업주답게’는 ‘노조는 주는 대로, 사업주는 마음대로’로 들린다. 노동자도 보고 있다!

또한 윤 대통령은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 단속해 건설 현장에서의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며 “단속이 일시적으로 끝나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조에 대한 공격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든다. 노란봉투법은 윤석열 정부의 대(對)노조 전쟁 한가운데에서 환노위를 통과했다. 이제 공은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만을 바라보는 ‘핵관의 힘’이 버티고 있어 전망이 밝지 않다.

국민이 약하면 정치가 날뛰고, 노조가 약하면 사업주가 날뛴다. 사업주가 독자적으로 노조를 상대하지 못하고 정부의 비호를 받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노조가 강한 것인가? 손해배상으로 노조 간부가 죽어 나가는 나라인데 말이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양쪽의 공격을 함께 받으면 심대한 타격을 입는다. 노조가 불법 행위를 했으면 처벌받아야겠지만, 정부가 노조를 순치하려 한다면 노조 전체가 합심하여 대항하고 국민들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국민의 대부분은 노동자이므로 노조가 약해지면 국민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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