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장관의 논리학

2023.02.28 03:00 입력 2023.02.28 03:01 수정

조건 명제를 다룰 때 범하기 쉬운 가장 간단한 논리적 오류는 전건 즉 앞 조건문을 부정하는 논법이다. 소위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거나 부정한답시고 앞 조건을 부정하는 조건문을 만들기 쉬운데, 그것은 대표적인 오류 논법인 ‘전건 부정의 오류’다. 요즘엔 형식논리학을 많이 다루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건 부정의 오류’는 논리학에서는 근본의 근본에 해당하는 문제다. 조건문 즉 <if “p clause” is true, only in that case “q clause” is true.> 라는 조건 문단이 성립될 때, 바로 그 전건(앞 조건문) 즉 ‘p 구절’이 참이 아닌 상황을 제기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후건, 즉 ‘q 구절’의 참 거짓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 이를 무리하게 연결시키는 경우 그것은 궤변이고 논리적 오류이다. 종종 논리학에 무지한 저질 논쟁에서나, 그것이 오류임을 아는 권력자가 무지한 비권력자를 겁박할 때 전건부정법이 사용된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얼마 전 이재명 야당 대표가 “대선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말하자, 법부무 장관은 “대선에서 이겼으면, 권력을 동원해 사건을 못하게 뭉갰을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고 반박했다. 논리 언어와 자연 언어의 차이 때문에 단순화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명백한 전건 부정 논법이다. 대선 패배와 검찰의 재소환 요구를 연결시킨 이 대표의 조건문 자체의 참 거짓을 다투려면, “표를 더 받는다고 있는 죄가 없어지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대항 논법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전건부정논법에 기댔다.

한동안 깔끔한 법률가의 이미지로 의원들을 호통쳐 온 한 장관에게 환호하는 국민들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여러 순배 논쟁이 오가며 소위 지저분한 쟁점들이 도마에 오르면서 장관의 논리 패턴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인상이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본회의 장에서 김민석 의원과의 설전 과정에서 법무부 장관은 또 다른 속내를 드러냈다. “제가 의원님의 질문에 대해서 그 프레임 안에서만 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죠”라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정가에는 상식인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는 레토릭을 떠오르게 하는 답변이었다. 상대편의 언어를 써서 그의 의견을 반박할 때, 청중들의 머릿속에서는 상대편의 프레임이 더 강해지는 한편 나의 주장은 약화된다는 조지 레이코프의 저서 이야기다. 코끼리는 공화당 즉 보수의 상징이다. 공화당을 반대하는 진영이라면 이 프레임을 벗어나는 담론을 사용해야 한다는 프레임 이론의 담론법을 떠올리는 정치적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장관이 종종 사용하는 불퇴전의 논쟁이 논리를 생명으로 삼는 법률가라서가 아니라 정파적 승리를 위한 프레임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실토하는 순간으로 비추어졌다.

장관은 의원의 질의에 답하는 과정에 질문의 프레임을 수용할 의무가 없는가? 논리학이라는 것은 합의된 프레임 안에서 진실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수사학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일부 사상가는 수사학을 악마의 대화법이라고 비판하곤 했다. 하지만 수사학과 정치 담론을 통해 리더십을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필자 역시 논리학과 수사학 즉 정치 담론을 대립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의 프레임 논법에서 국민들은 진실한 정치 공동체를 향한 수사와 담론보다는 뫼비우스의 띠를 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한반복되는 미꾸라지 논법과 피장파장 논법에서 국민들이 정상적인 국정 운영의 잘잘못을 가리기란 참으로 어렵다. 스타 장관이 국민의 시선이라는 ‘궁극의 프레임’을 망각하고 정쟁에 빠져들면 그 피로도는 모두에게 부메랑이 된다. 책임정치는 공중 분해된다. 지난 정부 탓도 정도를 지나치면 피장파장의 오류에 불과해진다.

이번 정부에서 우리는 역대급으로 많은 율사들을 보고 있다. 그들이 낡은 정치를 개혁할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그러나 정순신 변호사 인사 실패 건은 법률적 권리가 정치적 책임보다 앞서는 한국 율사들의 정치의식을 보여주는 듯해서 씁쓸하다. “절차적 정의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실체적 진실을 해치는 것이 아닌 한 문제 될 것이 없고, 사법 전문성을 통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의 행사일 따름인데 그것이 왜 문제가 될까?” 혹시라도 인사 담당 기관이 이런 대전제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주무 장관이 곧잘 강조하던 자신의 프레임이 사실은 공공성 보장이 아니라 전문가 체제의 사적 이익을 보호하는 장치였던 것이었을까? 이래저래 그의 논리학은 검증대에 오르게 생겼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