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는 일 하늘이 보고 있다

2023.03.10 03:00 입력 2023.03.10 03:04 수정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사람이 하는 일 하늘이 보고 있다

눈은 눈대로 좋고, 비는 비라서 좋다. 둘의 공급을 조절하며 바탕이 되어주는 빛은 그냥 좋다. 이제부터 비는 그간의 가뭄을 만회라도 하듯 본격적인 활약을 펼칠 것이다. 올해의 눈은 이대로 끝난 것인가. 예전의 기후를 보면 봄은커녕 여름 기운이 물씬한 무렵인 오월에도 눈이 오기도 하였다. 추위를 얼른 털어버리려는 안일한 사람들의 정문에 놀라운 일침을 한 방 놓은 셈이었다.

말석에서 노자를 더듬더듬 배우다가 드디어 회심의 한 문장을 만났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지만 아무리 성글어도 빠트리지 않는다). 세상일이 뜻대로 안 돌아간다고 여겨질 때, 저 글귀는 얼핏 위로가 될 법도 하지만, 반드시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시비선악이란 명확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라서 본인의 입장에서만 판단할 건 또한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뜯어보아도 아니다 싶은 놈일수록 승승장구하는 것만 같아서 어째 하늘의 그물이 부실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게 못난 마음의 한구석이기도 하다.

잔뜩 흐린 날씨를 딛고 심학산 오르는 길. 죽은 상수리나무 밑동을 옥죄던 눈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도 꿋꿋하게 쌓인 낙엽 사이로 눈의 기운은 남았으니 ‘천망회회 소이불실’의 뜻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내릴 땐 참으로 성글게 흩날리지만 지상에서는 엄청 단단하게 서로를 꽉 붙들던 눈. 어느새 나의 발바닥을 흥건히 적시던 눈.

산꼭대기에서 보면 멀리 한강은 물도리동처럼 둥글게 휘돌아 서해로 빠져나간다. 지난겨울 펄펄 내려 점점 쌓여가는 눈을 보면서 누가 던진 그물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나 놓치는 법이 없는 하늘의 그물. 눈이 한번 왔다 가면 세상은 빨래라도 한 듯 일순 깨끗해진다. 하지만 근심 가득한 이들의 가슴에 빗금 하나 긋기도 하였다. 눈 녹은 뒤, 간판에 녹이 슬고 얼굴에 그늘이 짙어지는 건 눈그물의 정체를 뜨끔, 알아차린 탓일 것이다.

올해의 눈은 이대로 끝날 것인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는 하늘. 며칠 전 중국 리커창 총리의 퇴임사를 통하여 눈 대신 이런 문장을 보내주셨으니, 사람이 하는 일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幹天在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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