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고용보험’은 어디에?

2023.07.20 03:00 입력 2023.07.20 03:02 수정

최근 실업급여가 논란의 주제이다. 실업급여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너무도 절실한 돈이다. 일할 때 보험료를 내고 실업을 당했을 때 받는 노동자의 권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부가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겠다고 나섰다.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공제한 최저임금액에 실업급여를 비교하는 편법을 동원하고 심지어 ‘시럽급여’라며 수급자를 조롱한다. 부끄럽고 답답하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에서 발생하는 극히 일부 현상을 과장해 공연한 논란을 유발하면서 정작 우리 사회가 집중해야 할 고용보험의 핵심 과제에는 소홀하기 때문이다. 바로 ‘전 국민 고용보험’이다. 이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전해준 의외의 선물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고용보험은 1995년 도입된 이래 낮은 급여, 짧은 수급기간, 광범위한 사각지대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도 사회적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학습지교사, 대리운전 기사, 식당 자영업자 등 불안정 취업자들이 생업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고용보험이 호명됐다.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오히려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전 국민 고용보험’이 등장한 것이다. 마침 불평등에 대응하기 위해 기본소득, 부의소득세(혹은 안심소득) 등 새 제도들이 제안되면서 전 국민 고용보험은 기존 소득보장을 혁신하는 대안으로 인식됐고, 문재인 정부는 2025년에 전 국민 고용보험을 완성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 또 하나의 선물을 불러왔다. 매달 취업자의 소득을 알아내는 ‘실시간 소득파악’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을 구현하려면 고용 지위에 따라 가입 여부가 결정되는 현행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 어떤 일을 하든 소득은 있기에 ‘소득 기반’으로 고용보험을 재설계하자는 구상이다. 그런데 프리랜서든, 가게 주인이든 소득을 기준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하려면 실시간 소득파악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신용카드 사용으로 전자거래가 일상화된 나라이다. 국세청이 마음먹고 달려들면 노동자는 물론 자영업자까지 매출과 소득을 산출할 수 있는 자료를 갖고 있다. 이는 고용보험을 넘어 모든 소득보장제도에서 완전히 다른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 ‘사각지대 없는 소득보장’이란 복지체제의 새 역사를 꿈꾸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1년, 현실은 어떠했는가? 우선 ‘전 국민 고용보험’ 단어를 찾기 힘들다. 정부가 ‘소득기반 고용보험’으로 이름을 정리한 모양이다. 정책 혁신을 상징하는 출발 명칭이 계승되면 좋으련만 중요한 건 내용이니 개선 상황을 살펴보자.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에 따르면 먼저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등 산재보험 특례적용 직종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고 이어 배달노동자, 대리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 그다음으로 행사도우미, 스포츠강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포괄한다. 당시 계획으로는 고용보험 가입자 수가 2019년 1367만명, 2022년 1700만명, 2025년 2100만명이다. 그런데 2023년 6월 기준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1518만명에 그친다. 정부가 예술인, 일부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고용보험을 확대하고 있지만 속도와 규모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2022년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보면 통계청 기준으로 비정규직 816만명 중 54%만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분석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900만명 중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51.9%에 그친다. 비정규직 2명 중 1명은 아직도 고용보험 없이 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고용보험 로드맵에서 2023년부터 시작하겠다던 자영업자 적용을 위한 사회적 논의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실시간 소득파악도 전체 그림을 찾을 수 없다. 2021년부터 일용노동자의 지급명세서 제출주기가 월 단위로 단축되고 내년부터 인적용역 기타소득에 간이지급명세서가 신설되는 등 부분적인 개선이 눈에 띄나 모든 취업자의 소득을 파악하는 종합계획과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없다. 게다가 실시간 소득파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20년에 기획재정부에 설치된 ‘조세 및 고용보험 소득정보연계 추진단’, 2021년에 국세청에서 출범한 ‘소득자료관리 준비단’은 지난해 말 해산했다. 앞으로 부처의 일상 업무에서 소득파악 작업을 진행하겠다지만 윤석열 정부가 실시간 소득파악에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 ‘시럽급여’를 운운할 때가 아니다. 여전히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이 고용보험 사각지대에서 일하고 있다. 정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과 실시간 소득파악에 온 힘을 집중하라. 제발 시대가 요구하는 핵심 과제를 직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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