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남겨진 연금개혁 ‘팩트 확인’

2024.04.24 20:54 입력 2024.04.24 22:25 수정

나는 연금개혁 공론화에서 전문가 패널로 숙의토론에 참가했다. 오랫동안 평행선만 달려온 연금개혁이야말로 공론화 방식이 적절하다고 생각하기에 나름 소명감을 가지고 토론에 임하였다. 앞으로도 공론화 방식이 여러 의제에 적용될 것이고, 당장 연금개혁 입법과정이 진행될 예정이므로 이번 연금개혁 공론화에서 주목할 점과 남은 과제를 제안한다.

우선, 시민대표단 다수가 ‘더 내고 그대로 받기’보다는 ‘더 내고 더 받기’에 손을 들었다. 미래세대 부담이 늘어나는 점을 생각했겠지만 자신의 노후가 불안하다는 우려가 더 컸던 셈이다. 특히 20대 청년들이 ‘더 내고 더 받기’를 지지한 건 꼼꼼히 되돌아볼 주제이다. 연령만 보면 상대적으로 미래세대 부담에 공감이 크리라 예상했지만 실제는 계속 높아질 보험료를 오랜 기간 적용받아야 하고 노후마저 막막한 처지여서 소득보장 쪽을 선호했다고 판단된다. 앞으로 지속 가능성 논의도 이어가야겠지만, 청년세대를 위한 노후소득보장 방안을 실질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공론화 절차에서는, 시민대표단이 학습한 숙의자료가 마무리 시점에야 공개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김상균 공론화위원장은 “과거 사례보다 더욱 길게 약 4주간의 시민대표단 학습기간을 보장”하였고 “시민대표단의 숙의자료도 모두 공개되어 있다”고 설명하였으나 실제 숙의자료가 홈페이지에 올라온 것은 공론화 종료 6일 전, 이러닝 동영상은 4일 전이었다. 사실상 공론화 종료를 앞두고 생색내기로 올렸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공론화 결과를 보면 자료집과 동영상을 공부하고 실시한 2차 조사에서 결정적 의견 이동이 있었다. 자료에 대한 질의응답도, 상호 숙의과정도 없는 ‘자습’을 거친 후 복잡한 연금개혁 주제에서 의견이 바뀐 것이다. 그만큼 숙의자료의 역할이 컸지만, 뒤늦은 그리고 조용한 공개로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이 자료를 두고 토론도 검증도 하기 어려웠다. 연금개혁처럼 시민 관심이 큰 사안일수록 자료를 적극 공유하고 사회적 토론을 촉진해야 시민대표단의 숙의도 넓어지고 최종 결과에 대한 무게도 더해진다. 이후 공론화에선 자료 공개를 전면화하고 외부토론을 활성화해야 한다.

한편 연금개혁 논의에서 늘 제기되는 ‘팩트 확인’은 이번에도 이뤄지지 못했다. 공론화는 근거 기반의 숙의를 토대로 하기에 공론화 과정에서만은 엄밀한 팩트 점검이 이뤄지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시민대표단 어느 분이 생방송 마무리 소감으로 “아쉬운 점은, 정확한 정보 접근인데 (중략) 양측의 팩트 체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 결론 도출에 한계가 뚜렷”했다고 지적했듯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실들을 둘러싸고 상반된 주장이 되풀이되었다.

주요 공방을 보자. ‘소득대체율 인상은 노인 빈곤 개선 효과가 미미하다 vs 노인 빈곤이 심각하니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한다’, ‘50%/13% 방안은 미래 재정을 악화시킨다 vs 현재보다 재정이 나빠지지 않는다’, ‘현재 가입자는 받는 급여에 비해 절반만 내고 있다 vs 1990년생 기준으로 기금수익 감안하면 내는 만큼 받는다’, ‘외국 국고지원은 연금크레딧 등 사회정책적 지원이 중심이다 vs 유럽은 전체 지출의 25%를 국고 투입한다’. 사실 이 내용은 연금개혁에서 서로 강조하는 가치, 주장과 무관하게 ‘있는 그대로’를 확인하면 정리되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제한된 시간과 토론 형식으로 반박의 기회를 갖기 어려웠고 시민대표단은 이를 지켜보며 내내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공론화 자리에서조차 팩트 점검을 하지 못하는, 우리 연금개혁 지형의 부끄럽고 어처구니없는 현주소이다.

심지어 소득대체율 인상에서 연금액은 가장 핵심 정보인데, 부풀려진 잘못된 금액이 공식 숙의자료와 이러닝 영상으로 시민대표단에 전달되었다. 소득보장 쪽은 노인 빈곤 개선을 위하여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강의 동영상과 프레젠테이션 자료에서 저소득자의 인상액이 50만원으로 가장 많다고 제시하였다. 하지만 실제는 40년 가입해도 증가액은 23만원이다.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그림, 설명, 영상으로 시민대표단에 제공해도 되는 것일까. 앞으로 기본적 사안에 대해서는 공론화위 자체에서 팩트를 점검하는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제 한 달, 국회의 시간이다. 국회 역할이 단순히 법안 성안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연금개혁은 한 번에 완료될 수 없는 연속개혁이기에 국회 심의과정에서 반드시 ‘팩트 확인’이 이루어지기 바란다. 그래야 국회의 입법도 더욱 권위와 정당성을 가지며 후속 개혁 논의도 생산적으로 나갈 수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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