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은 매체적·기호적·언어적 공간이자, 세상의 일부인 예술작품을 가장 기술적·효용적으로 드러내는 표상의 장소다. 미술관 종사자들은 그곳에서 수많은 시각 텍스트들을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재현한다. 소장과 전시로 보다 많은 이들이 재현된 서사 구조와 서술 전체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그들의 일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예술가들이 생성한 텍스트를 재해석함으로써 삶과 예술 간 관계를 다시 돌아보도록 하는 것이 미술관 종사자들의 직무라면, 미술관장의 주요 역할은 다양하게 병치되어 있는 그 관계 중에서 특수한 요소를 선택하는 데 있다. 당대 예술이 처한 미적 가치판단의 불가능성 앞에서 일정한 방향과 좌표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관장의 업무다. 다만 여기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미술의 경향과 흐름을 알아야 할뿐더러 미학적·미술사적 지식과 현장 경험도 풍부해야 한다. 물론 관장에겐 미술관 행정 수장으로서의 책무도 부여된다.

그런데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전문성과는 무관한 이들에게 공립미술관장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말 대전시는 미술사가·큐레이터 출신의 전임 관장 임기가 종료되자 신임 대전시립미술관장에 시청 소속 일반직 공무원을 발령했다. 수원시도 시립미술관장에 수원시 복지여성국장을 지낸 공무원을 앉혔다. 이 밖에 몇몇 지자체는 능력 검증이 덜 된 지역 인사들을 문화예술기관장으로 낙점했다.

지자체들의 이러한 양태는 전문화로 가고 있는 시대상황에 비춰보면 ‘퇴행’이다. 지난 1일 공석이던 경기도미술관 신임 관장에 전시기획 전문가인 전승보 전 광주시립미술관장이 선임되면서 ‘기우’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앞선 사례를 접한 이들은 미술 문외한들의 관장 입성을 우려한다.

일각에선 공무원이 관장을 맡더라도 기획은 학예사가 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되지도 않을 소리다. 미술 생태도 모르고 소장, 전시, 교육에 관한 이해도 없는 이들이 어떻게 자신보다 전문가인 이들을 관리·통솔할 수 있겠는가. 소위 ‘미알못’이 무슨 방법으로 미술의 역사를 새롭게 기술할 것이며, 동시대 미술의 내일을 조명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에 혹자는 재차 미술전문가들의 행적을 탓한다. 전문가들이 관장을 했어도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맞는 말 같지만 이는 구조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인식이다. 보통 미술관은 1~2년 앞서 다음 전시를 기획하므로 신임 관장은 전임 관장이 벌여놓은 일을 처리하다 임기의 절반을 보낸다. 뭐 좀 하려다 보면 미술관을 떠나야 한다. 영국의 테이트와 미국의 모마처럼 실력만 있다면 수십 년씩 연임하는 외국과 큰 차이다.

한국도 행정이 예술기관을 쥐락펴락한 시기가 있었다. 1969년 설립된 국립현대미술관도 초기엔 공무원이 관장을 했다. 지역 공립미술관들 또한 미술과 연관성 없는 측근 인사들이 관장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무지의 결과는 심각했으며, 파벌을 형성하는 등의 폐단이 컸다. 이후 국민 문화의식 수준이 올라가고 미술관의 독립성과 정체성이 강조되면서 자연스럽게 전문가 체제가 굳어졌다.

하지만 작금에 이르러 이런 흐름을 ‘역행’하는 낡은 관행의 잇따른 재발과 그로 인한 파급이 심상찮다. 미술인들은 미술관의 표류와 종사자들의 심리적 해체까지 염려하고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어차피 충격을 받긴 매한가지고 아무나 하는 관장이라면 공무원보단 차라리 ‘AI(인공지능) 관장’이 낫지 싶다. ‘AI’는 그나마 무한한 학습능력이라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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