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디아 골딘이 노벨 경제학상을 탔다고? 드디어 한국에서 골딘을 읽겠구나, 했다. 골딘은 성별 임금격차의 원리를 이렇게 밝혔다. 노동시장에는 탐욕스러운 일과 유연한 일이 있는데, 전자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갈아 넣을 수 있는 일, 후자는 그렇지 않은 일이다. ‘가정’ 영역에서 책임 있는 사람, 즉 여성은 후자로 갈 수밖에 없는데, 급격한 임금 인상은 전자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골딘의 지적은 핵심적이다. 여성이라 해야 하는 뭔가가 있는데, 그게 노동시장 같은 사회구조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
그런데 골딘이 책에서 주목한 1958년에서 1978년 사이 출생한 미국 여성들은 커리어와 가정, 둘 모두를 가지려 노력한 집단이다. 이들이 부부 관계에서 전략을 짜 커리어를 이어간 결과 여성이 유연한 일자리로 몰린 게 문제 배경이다. 이들은 유연한 일자리와 가정생활이 서로 보완된 성취라 여긴다. 여기서 우리와 차이가 있다. 한국에선 모두가 탐욕스러운 일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골딘이 꼽은 가정의 핵심인 아이는 방해물인 상황이다.
지난 몇년 동안 젊은 여성들은 열심히 정신을 차렸다. 여럿이 식당에 가면 수저는 누가 놓아야 할까? 주로 수저를 놓다가 화난 사람들은 개인기를 개발했다. 일단, 먼저 놓지 말고 가만히 있으세요. 그러면 상대가 놔줌. 정신을 차리지 않아 코 베이고 있단 걸 알아버린 사람들이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고 서로 다그치던 피곤한 시절, 나는 그 일원이었다.
그 시절 다니게 된 직장에서 회식을 갔는데, 대표는 자기 앞에 놓인 수저통이 투명한 것처럼 앉아 있었다. 뭐지? 일단 가만히 있어야지. 그런데 내가 멈춰 있자 팀장님이 주섬주섬 수저를 깔았다. 대표는 정신없이 메뉴판을 보고 있었고, 눈치게임은 우리 둘 사이에서만 일어났다. 나는 결국 ‘물은 셀프’ 코너로 향했다.
골딘은 성별 임금격차의 해법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탐욕스러운 일자리에 지나친 고임금을 주지 않는 것, 육아에 국가 재정을 더 많이 투여하는 것, 부부가 고르는 일자리를 분화시키는 젠더 규범을 바꾸는 것이다. 맞는 말이지만, 골딘의 이야기는 결혼 가족을 모두가 원한다는 전제 아래에 있다. 지금 한국에선 결혼과 출산을 강요받던 여성들이 화가 나 있고, 기껏 주목된 골딘을 결혼 부부 중심 ‘저출생’ 대책에만 인용하면 아깝다. 다만 결혼을 안 한다고 인생이 혼자인 것처럼, 출산을 안 한다고 인생에 돌봄이 없는 것처럼 자연스레 여기는 걸 문제 삼고 싶다. 한국은 말하자면 다 같이 ‘수저 놓지 말고 가만히 있기’를 하는 중이다. 모두가 수저를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 정도의 커리어패스를 갖겠다는 것이다(탐욕스러운 일자리의 핵심 성질이 이것이다). 수저가 있어야 밥을 먹는데, 눈치게임은 하는 사람들끼리 한다.
수저를 그냥 놓고 싶다. 내가 몸을 살짝 튼 걸 보고 상대가 내 빈 컵에 물을 따라주고, 나는 상대 옷에 음식이 묻은 것을 알아채고 냅킨을 주는 사이에서 주로 밥을 먹고 살면 좋은 인생인 것 같다. 세상에 여러 능력이 있지만, 내가 알아챈 남의 크고 작은 필요를 채워주고, 남이 그걸 해줬단 걸 알아채는 능력은 너무 진 빼지 않고 사는 데 필수 아닐까. 가정을 꾸린 여자들만의 것이어선 안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