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박정희 정권 개발독재에 맞섰던 ‘성남(광주대단지) 민권운동’을 다뤘다. 서울 도심개발 지역에서 쫓겨나 광주대단지로 강제 이주된 주인공 안동 권씨에겐 윤기 나는 구두 열 켤레가 있었다. 딱지에 불과한 전매입주권, 칠흑 같은 루핑집, 갚을 길 없는 토지취득세 고지서. 이런 진흙탕 같은 삶과 반짝이는 구두 꾸러미는 어울리지 않았다.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페르소나를 품고 살았던 권씨였다. ‘이래 봬도’ 대학 나온 사람 권씨와 ‘광주대단지 토지불하 가격시정 투쟁위원회’ 위원장 권씨라는 간극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971년 8월10일 광주대단지 철거민들의 생존권 투쟁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 시위대 앞에 엎어진 삼륜차에서 쏟아진 참외를 향해 각목을 휘두르던 철거민들이 벌떼처럼 달려드는 걸 보고 나서다. 지상에 방 한 칸 얻기 위한 처절한 투쟁 속에서도 땅에 뒹구는 참외까지 주워 먹게 하는 절실한 무엇. 마치 “나체화를 보는 것 같은” 충격이었고, 구차하고 초라한 인간의 바닥이었다. 평생을 나체화 속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쳤던 ‘대학 나온 안동 권씨’는 그 순간 자신의 바닥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 그의 기억은 그걸로 끝이었다. 경찰이 제시한 사진에서 석유통을 들고 버스 꼭대기에 올라간 ‘폭도’가 본인이라는 사실조차 믿을 수 없었다. 그 후 권씨 행방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유일한 흔적은 단칸방 장롱 위에 가지런히 놓인 구두 아홉 켤레였을 뿐. 남겨진 구두는 그의 욕망이고 자존감이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년 전 유시민 작가의 유튜브 방송에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인생 최고의 책이라고 소개했다. 해방 후 첫 도시빈민운동사를 다룬 거창한 서사라서가 아니었다. 삶이든 정치든 그 자리의 평균값을 갖지 못한 사람은 ‘내 안의 욕망’이라는 거악과 수시로 싸울 수밖에 없다. 이 대표 역시 그랬다. 그때마다 그는 ‘사내’를 떠올리며 고단했던 인생의 결가부좌를 풀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유 작가가 물었다. “당신의 아홉 켤레 구두는 무엇이냐”고. 이 대표는 “자존심, 인정 욕구”라고 답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1970년대 경제부흥기에도 소년 노동자로 위장취업해야 했던 그 세월을 자존심, 인정 욕구가 아니었다면 어찌 버텨냈을까.
하지만 이재명은 이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여선 안 된다. 비주류, 결핍이라는 신화가 더이상 통하지 않는 때라서다. 내년 총선은 이 대표에겐 변방의 장수에서 정치 지도자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이다. 구조적으론 진보·보수라는 양극화 정치가 통하지 않는 시대이다. 이뿐만 아니라 출생률, 기후와 같은 미래 의제들은 지금처럼 정쟁화 방식으론 해결할 수 없고 유권자 지형도 다원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퇴행하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잡는 일도 이 대표 역할이다.
안타깝게도 이 대표는 낡고 해진 아홉 켤레를 여전히 끌어안고 있다.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이 그의 정치에도 심리적 주둔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총선의 중대 변수인 선거제 개편에 소극적이거나 오락가락 갈피를 잡지 못한다.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 위성정당 창당 불씨를 끄지 않으려 한다. 이는 시민사회, 진보정당을 우군으로 여기지 않는 인식이고 차기 대선 주자인 이 대표 본인 중심의 선거환경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현역 의원·친이재명계 중심의 공천 논란 와중에 성사된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의 회동에서도 구체적인 총선 구상은 밝히지 않고 3총리 연대설 실체만 확인했다고 한다. 경쟁자들의 이기심과 욕망도 인정하는 것, 그래서 49 대 51의 싸움에서 기우뚱한 균형을 잡는 것이 의회정치의 본질이다. 때로 불리하고 불확실하더라도, 타협하고 양보하는 리더십이 정당 대표의 정치력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빗장을 풀지 않고 있다. 2차 체포동의안 정국 당시 이 대표는 단식, 부결 촉구 메시지로 저항했다. 자기 연민에 대한 확신, 세상에 대한 불신, 부당한 억압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극대화한 장면이다.
권씨가 욕망이라는 허세, ‘아홉 켤레의 구두’를 버리기로 작정하지 않았다면 광주대단지 투쟁 한복판에 설 수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그를 지도자의 길로 이끈 건 한 켤레의 구두였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한 켤레의 구두로 떠난 사내’의 역설이라 믿는다. 이 대표는 어떤 사내로 기억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