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의 ‘다음 30년’

서울 예술의전당이 며칠 전 공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시작했다. 회원 가입을 하고 ‘디지털 스테이지’에 접속하면, 누구나 예술의전당에서 제공하는 공연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PC와 스마트폰 앱으로 연결하면 된다. 지난 11월15일에 열린,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안드리스 넬손스 지휘)의 공연 실황도 디지털 스테이지에서 바로 만날 수 있다.

공연 OTT가 이제 혁신적인 기술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술의전당이 한다니까 솔깃하다. 예술의전당은 적절한 재원과 다양한 양질의 콘텐츠, 공연 영상화 사업 ‘SAC 온 스크린’으로 다진 동영상 녹화 및 녹음 기술력도 갖췄다. 이를 모은 역량이 온라인상에서 잘 구현된다면, 세계에서 이 분야를 선도한 영국 국립극장(NT)의 ‘NT 라이브’ 못지않을 수 있다. 예술의전당의 디지털 스테이지보다 ‘한국의 공연예술’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OTT는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과찬의 말이 아니다. 실제로 예술의전당은 잘 안 하려고 해서 그렇지, 마음먹고 하기만 하면 이런 정도의 사업은 한국에서 제일 잘할 만한 곳이다. 예술의전당은 오페라극장 개관 시점을 기준으로 올해 ‘전관 개관 30주년’을 맞이했다. 한 세대를 완성한 이 역사가 어찌 허투루 이루어졌겠는가. 뜻깊은 한 해의 대미를 장식하는 디지털 스테이지 사업은 오랜 예술의전당 역사의 일부분이지만, 모처럼 마음먹고 한 참신한 사업 같아 기대가 크다.

역사가 길면 말도 많고 탈도 많아지는 건 필연이다. 30년 역사의 예술의전당도 이를 피할 수 없어 문화예술계 일부에 ‘비호감’이 없지 않다. 문화예술 분야는 우리 사회의 일부인데, 거기에서 또 ‘일부’인 소수의 반감이라고 하여 사소한 일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지금보다 훨씬 성장한 예술의전당 ‘다음 30년’을 위해서는 고칠 건 고치고 가는 게 좋다.

예술의전당에 대한 비호감 요인 가운데 흔한 게 ‘대체로 불친절하다’는 점이다. 전반적으로 서비스 마인드가 부족해서 빚어지는 이런 문제는 현장에서 관객을 대하는 태도나 민원을 처리하는 과정 등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는 조직이 관료화했다는 증거다.

예술의전당의 기획력 부족을 비호감의 원인으로 꼽는 사람들도 적잖다. 문화예술과 공연장에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 ‘예술의전당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따질 때 이런 비호감을 자주 내비친다. ‘스스로 만드는 일’(기획 및 제작)은 태만한 채 ‘남이 만든 것’(대관사업)만 탐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대관극장’이라는 오명이다. 예술의전당에 변명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 공간을 활용하고 싶어 줄을 서는 예술단체와 예술가들이 넘치니 말이다. 이 요구를 우선 받아들이는 걸 공공기관의 역할로 생각한다면, 대관극장이라는 불명예는 억울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가 중요하다. 하지만 ‘다음 30년’의 출발선에 선 예술의전당의 앞날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오랫동안 공연과 전시 등 한국 문화예술 공간의 지표가 된 ‘우월적 지위’는 크게 약화하고 있다. 서울과 인근의 공연장과 미술관은 쾌적한 시설과 참신한 프로그램, 전문화한 운영 등으로 예술의전당의 명성을 위협한다. 몇년 내에 서울 시내에는 대형 공연장 여럿이 개관할 예정이다. 한때 예술의전당을 ‘교과서’로 삼아 배우고 익히던 지방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아, 이젠 ‘낡은 교과서’ 취급이다.

지난해 6월 취임한 예술의전당 장형준 사장은 “순수예술 전용극장으로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여기에서 ‘순수예술 전용극장’이란 무슨 뜻일까. 내가 보기에, 아마 클래식과 오페라 등 고급예술의 보루(堡壘)가 되겠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클래식(기악과 성악)이 세계로 웅비하며 상승 기류를 타고 있다. 한국 클래식의 르네상스란 말도 들린다. 장 사장의 비전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그의 판단을 응원하면서, 앞으로 30년 뒤 예술의전당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본다.

정재왈 예술경영가 서울사이버대 교수

정재왈 예술경영가 서울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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