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끝낼 것인가

2023.12.24 19:49 입력 2023.12.24 19:50 수정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연말정산으로 모두가 분주한 시간이다. 혹한의 날씨만큼이나 경기침체로 홀쭉해진 통장 잔액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시리게 하기도 하지만, 미뤄왔던 친구와의 만남을 가지기도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연말을 따뜻하게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모두가 지난 1년을 잠시 돌아보며 정리하는 와중에, 이미 한참 전에 정산이 됐어야 할 일들을 시작조차 못한 사람들이 있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노란봉투법’ 등등 국회 혹은 대통령의 거부로 아직까지 자기 자리를 못 찾아간 법안이 수두룩하다. 너무나 상식적인 대비조차 하지 않은 당국의 책임으로 국민이 길을 걷다가 허무하게 죽음을 맞아도, 국가가 보증해서 빌려준 전세금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도, 일터를 지키기 위해 당연하게 외친 목소리가 수십억원의 배상 판결로 돌아와도, 정치는 그동안의 약속과 책임을 잊고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임시국회에서조차 법안 통과는 난망해 보인다.

결국 혹독한 겨울을 버티는 것은 국민 몫이 되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거센 눈길을 헤치며 오체투지를 이어가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국회 앞에서 영하 15도의 날씨를 뚫고 삭발까지 감행했다. 어느 누가 추운 겨울을 길 위에서 오들오들 떨며 버티고 싶을까.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다. 이번에도 통과가 안 되면 법안들은 휴지조각이 될 게 뻔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정치는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정치인들 스스로 연말정산을 시킨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올해도 정산하지 못한 과제들이 내년이라고 다를까. 이태원 참사로 멈춰버린 시간은 400일을 넘긴 지 오래고, 전세사기 이슈가 이른바 ‘빌라왕 사태’로 전국적으로 알려진 지도 2년이 다 되어간다. 노란봉투법 통과를 위해 노동자들은 무려 10년의 시간을 싸웠다. 작년엔 정권이 새로 출범해 준비가 부족했다고 하더라도, 올해는 댈 핑계도 없어 보인다. 앞선 과제들뿐 아니라 서민들을 위협하는 불경기, 가계부채, 연금 등 모두가 간절히 풀리길 원했던 2023년의 숙제에 대해 누가 무엇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정부는 집무실 책상 앞에 그저 앉아 있기만 하고 이를 견제할 국회의원들은 지역에서 배지 한 번 더 달 궁리만 하고 있다.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기업이 곧 국가’라 말했다고 한다. 정치인일지라도 나태하게 살다 보면 국가, 정부, 기업의 개념적 차이를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대통령이라면, 살을 에는 추위를 견디는 국민의 절박한 농성과 절규를 외면한 채, 따뜻한 만찬장에서 자신의 존재조차 부정하는 말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백번 양보해서, 현 대통령은 답이 없을 수 있다. 그렇다면 국회라도 답이 있어야 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임기를 끝낼 것인가.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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