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폭력과 애도시위

어떤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행위가 폭력이 될 수 있을까? 애도행위가 아무리 부적절하고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폭력이라는 딱지를 붙여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최근 벌어진 일련의 소동을 나는 ‘애도폭력’이라 부르고 싶다. 지난 1월23일 충남 서천시장 화재를 배경으로 이뤄진 윤석열·한동훈 회동이 비판받는 이유는 단지 ‘정치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치쇼가 재난 현장을 주목하게 하는 대신 재난을 지워버렸다.

서천시장 292개 점포 중 227개가 불에 타, 80%가량의 생존터가 사라진 대규모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을 앞두고 터진 정치적 갈등, 그러니까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연기만 수십대 카메라 앞에서 선보이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지금까지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찾은 재난 현장 중 이렇게까지 재난이 삭제된 경우가 또 있을까. 차라리 그 둘이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시커먼 잿더미 위에서 눈물짓는 늙은 상인의 얼굴이라도 언론에 보도됐을 것이고, 지방정부의 대책에 대해 한 줄이라도 더 자세히 언급됐을 것이다.

윤·한의 서천시장 회동이 있던 시점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막기 위해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의 필사적인 몸부림이 이어지던 때이다. 가족들의 삭발이 있었고, 거부권 행사가 예측되던 전날은 체감온도 영하 20도가 넘는 혹한에도 밤새도록 1만5900배 철야행동이 이어졌다.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밤샘 절을 ‘시청’하다 새벽에 달려가는 시민이 있었지만 대통령의 거부권은 망설임 없이 행사되었다.

정부와 여당은 “국론분열을 야기하는 정쟁의 도구”인 특별법 대신 빠른 보상과 지원을 약속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자 또다시 ‘시체팔이’라는 악성댓글이 유가족에게 쏟아졌다. 유가족 김남희씨의 말처럼 “유가족의 바람인 진상규명을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거부한 것”이다.

애도폭력은 애도 자체가 폭력이 되는 사태다. 어떤 애도는 공적 공간에서 금지된다. 이를 위해 특정한 애도만 선별적으로 허용된다. 애도를 애도로 덮는다. 정부·여당 인사들은 참사 초기부터 ‘보상을 해줄 테니 진상조사는 빼자’는 주장을 유가족에게 전달해왔다. 윤 정부의 ‘재난조사가 정권의 위협’이 될 거라는 피해망상은 현 권력이 정상적으로 공적 영역을 통치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취약함을 드러낸다. 취약한 권력이 행사하는 힘은 폭력적이고, 폭력적인 만큼 약하다.

이 소동 한가운데서 지난여름 14명이 사망한 오송참사 진상조사가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힘으로 이뤄졌다. 중앙정부는 국정조사를 실시하지 않았고, 충북도는 진상조사를 하지 않았다. 대신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독립적인 진상조사를 진행하고 조사보고서를 마련했다. 재난·참사 관련 국가의 지원 없이, 국가의 무관심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유가족·시민·전문가 집단이 독자적으로 작성한 첫 사례다. 애도는 죽음에 따른 상실을 슬퍼하는 것만 아니라, 무엇을 상실했는지에 대한 앎을 포함한다. 진상규명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애도의 방법일 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싸움이야말로 애도의 사회적 실천, 애도시위이다. 오송참사가 귀중한 첫발을 내디뎠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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