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과 회화나무

2024.02.12 20:09 입력 2024.02.12 20:10 수정

아관파천(俄館播遷). 용어도 괴이하지만, 내용은 더 신산하다. 쉽게 말해 ‘러시아공사관으로 망명’이란 뜻이다. 아(俄)는 러시아를 칭하는 한자 ‘아라사(俄羅斯)’의 첫 글자이고, 관(館)은 ‘공사관’의 관이다. 파천이란 임금이 도성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난 가는 일인데, 고종이 한양을 떠나지 않았으므로 파천이 아니라 망명이 옳다는 의견이 많다. <고종실록>에는 ‘이어(移御)’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일본 공사관과 일본인이 설립한 ‘한성신보’에 ‘아관파천’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어 지금에 이른다.

설을 며칠 앞둔 1896년 2월11일, 고종은 일제의 눈을 피해 궁녀의 가마를 타고 서둘러 경복궁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지금은 ‘고종의 길’로 알려진 미국대사관 뒷길을 이용했다. 이 황망한 광경을 지켜본 자는 바로 고종의 길 북쪽 편, 덕수궁 선원전 터에 사는 회화나무였다. 200여년은 족히 되었을 회화나무는 지금 덩그러니 서 있다. 고종의 피난길을 배웅하고 궁궐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던 회화나무가 사는 곳은 예전에 경운궁이었다가 덕수궁(선원전 영역)으로 바뀌었고, 일제강점기엔 경성제일공립여자고등학교로, 광복 후엔 경기여고가 들어섰던 자리다. 지금은 선원전 영역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중국이 고향인 회화나무는 우주의 상서로운 기운을 전해주는 나무로 생각해 옛사람들이 자주 심었다. 또한 학자수(學者樹)라는 별칭답게 선비, 삼공(三公) 등을 상징하다 보니 궁궐이나 사대부 주택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창덕궁의 회화나무처럼 덕수궁 선원전 터의 회화나무도 궁궐 식구 중 하나였다. 2004년에는 원인 모를 화재로 고사 위기에 처했다가 다시 살아났으니, 이 회화나무도 고종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있다.

한 나라의 국왕이 첫새벽에 도망치듯 궁궐을 나와 떠돌던 것을 회화나무는 애처롭고 서글픈 마음으로 지켜봤을 것이다. 고종에 대한 애틋한 마음의 표현일까? 원래 반듯하게 자라던 회화나무가 언제부턴가 고종의 길 쪽으로 기울어 자라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지팡이를 짚듯이 지주대에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다.

꼼짝없이 제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지리적 상황과 운명은 선원전 터의 회화나무나 우리나 매한가지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끼어 줄타기하며 균형을 잡아야 하는 우리 처지는 한 세기가 흘렀어도 변한 게 없다. 오늘 고종의 길을 걸으며 우리의 좌표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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