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으로만 증명되는 학대도 있다

2024.02.25 20:08 입력 2024.02.25 20:16 수정

이달 초, 용인 장애아동 학대 사건의 피고인 특수교사는 벌금형의 선고를 유예받았다.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싫어 죽겠어.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고 말한 부분이 유죄로 인정되었다. 피해아동의 부모가 유명인이라 더욱 지대한 사회적 관심을 받은 이 사건에서 떠오른 법적 쟁점은 ‘녹음의 증거능력’이었다.

스스로 녹음을 할 수 없는 피해자를 위해 누군가가 대신 실행한 녹음 덕분에 범죄가 세상에 밝혀진 사례는 적지 않다. 사회복지재단 가정지원센터에 근무하며 한 가정에 파견된 아이돌보미가 10개월 된 아기를 돌보며 “미쳤네, 미쳤어, 돌았나, 제정신이 아니제, 미친O 아니가 진짜”라고 말하는 것이 부모가 몰래 설치한 녹음기에 담겼다. 아이돌보미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몇년 전 대리한 사건 중에는 침조차 스스로 못 삼키는 최중증 장애아동이 특수학교 담임교사로부터 폭언을 들으며 교실 안 화장실에 갇혀 있던 건도 있었다. 부모가 아이 옷 속에 넣었던 녹음기 안에는 담임교사가 아이를 화장실에 가두며 ‘오줌을 싸든 말든 마음대로 해’ ‘너 힘들게 할 방법은 되게 많아’ 등의 말이 담겨 있었다. 피해아동은 언어표현을 전혀 할 수 없었기에 홍채의 움직임을 모니터에 연결하는 기술을 활용해 어렵사리 피해 진술을 했고, 가해교사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녹음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없었다면 이 피고인들은 과연 단죄받을 수 있었을까.

몰래 하는 녹음을 두둔하거나 종용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비밀을 몰래 침범하는 행동은 인간으로서의 예의도 아니거니와 법으로도 금지된 불법행위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지난달 대법원은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가방 속에 부모가 넣어둔 녹음기를 통해 드러난 아동학대를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초등학교 담임교사인 피고인은 자기 학급인 피해아동에게 ‘더 울어. 너는 다른 반 아이니까. 거짓말쟁이야. 나쁜 어린이에서 최고 나쁜 어린이로 변하고 있네’ 등의 말로 망신을 주며 고립시켰다. 대법원은 불법 녹음이기 때문에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용인 장애아동 학대 사건 1심 판결에서 녹음이 증거로 인정된 이유는 ‘정당행위’였다. 공개되지 않는 타인 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것은 맞지만, 피해아동이 스스로 학대를 방어할 능력이 없는 장애아동이고, 피고인의 범행이 CCTV가 없는 맞춤학습실에서 일어난 것을 고려하면 이 녹음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로서 위법하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굳이 불법을 피하고자 한다면 피해자가 직접 녹음 버튼을 누르면 되지만, 언제 버튼을 몰래 누를지 상황 판단이 가능할 정도라면 몰래녹음은 안 해야 맞다. 특히 신뢰가 중요한 학교에서 아이에게 녹음을 지시하거나, 일단 몰래라도 녹음하고 보자는 식의 시도는 가당치도 않다.

그러나 타인에 의한 녹음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능사일까. 녹음을 통해 보호되는 중증 장애인, 영유아, 쇠약한 노인도 있다. 직접 대리했던 장애아동 사망사건 역시 그러했다. 장애인 거주시설에 건강히 입소했지만 얼마 후 온몸에 피멍과 상처가 가득한 채 심정지로 발견된 장애아동의 몸에는 학대의 흔적이 선명했다. 오로지 자해 때문이라는 시설 측의 궤변을 깨뜨릴 증거가 없어 결국 사건은 허무하게 종결되었다. 유족의 눈물과 억울함을 닦아 줄 녹음 한 조각이라도 나오길 몹시도 바랐던 사건이었다.

스스로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불가능한 피해자를 위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감행된 누군가의 녹음이 가해자에게 도리어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법이 더 세심하고 사려 깊게 작동하길 바란다.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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