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어느 시대에도 ‘고려장’은 없었다

2024.05.05 20:12 입력 2024.05.05 20:20 수정

‘고려장(高麗葬)’이란 말이 있다. 중장년층이면 누구나 알 법한 단어다. 이 말에 대해 “고려시대에 나이 든 부모를 다른 곳에 버려두고 오던 풍습이 있었다는 설화” 따위로 설명한 글을 자주 접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그 이전과 이후 어떤 때에도 그런 풍습이 있었다는 역사 기록은 없다. 그와 반대로 조선 조정에서 부모나 조부모를 학대한 자에게 강상죄를 물어 극형에 처했다는 기록은 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한 지방의 관리들을 엄히 징계하고, 지역의 행정 등급을 강등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강상죄란 우리가 흔히 아는 삼강오륜 등의 도덕을 심하게 위반한 죄를 가리킨다.

‘고려장’이라는 말은 불경의 ‘기로국 설화’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기로’가 음이 비슷한 ‘고리’ 혹은 ‘고려’로 변이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기로국 설화도 고려장 같은 풍습이 실재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고려장 이야기가 일본의 풍습이며, 일본에 의해 한반도의 문화로 왜곡됐다는 설도 사실이 아니다. 우선 이런 설화가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와 유럽 등지에서도 전해진다. 또 일제강점기 이전의 우리 문헌에 이미 전래 설화로 고려장 이야기가 등장한다. 특히 이들 설화 모두 그런 풍습이 실재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모에게 잘못하면 훗날 자식에게 똑같은 일을 당한다’는 경고가 이야기의 중심 줄거리다. 즉 세계 곳곳에서 어른 공경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옛날이야기가 고려장 설화의 뿌리다.

한편 고려(高麗)의 또 다른 표기가 ‘고리’다. 麗는 ‘고울 려’와 ‘나라 이름 리’로 읽힌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고려’를 ‘고리’로도 불렀다. 지금도 “옛날의 때”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는 ‘고릿적’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케케묵었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고리짝 시절 이야기한다’는 표현 속의 ‘고리짝’은 ‘고릿적’의 오자다. 표준어 ‘고리짝’은 “키버들의 가지나 대오리 따위로 엮어서 상자처럼 만든 물건”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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