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은 지고 윤석열의 시련은 시작된다

2024.05.05 20:16 입력 2024.05.05 20:19 수정

윤석열 대통령은 아직 총선 참패가 본인에게 뭘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한 듯하다. 108 대 192. 탄핵선 근처까지 몰린 압도적 여소야대 국회는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 3년간 직면하게 될 현실이다. 총선을 통해 여소야대 상황을 뒤집고 말 잘 듣는 의원들을 앞세워 국회를 틀어쥐려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야당 협조 없이 굵직한 정책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해외 순방이나 다니면서 정책 결정권 없이 내각제하의 대통령처럼 집권 후반기를 보내야 할지 모른다. 이제 여론을 무시하며 100% 본인이 원하는 대로 국정을 운영하다가는, 처지를 부정하며 ‘격노’만 하다가는 중간에 추락할 수도 있다.

최근 행보를 보면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 후 낙선자들에게 약속한 “부족함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회담을 했다. 대통령이 재임 720일 만에 과반 제1야당 대표를 처음 만났다. 2년간 외면하던 협치에 늦게나마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인지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야당 대표의 요구를 모두 외면했고 회담은 맹탕으로 끝났다. 이 대표의 짧은 질문에 윤 대통령의 긴 답변이 이어졌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의료개혁과 소통 확대, 민생 개선에 총론적으로 인식을 같이했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누가 이 이슈에 반대하겠는가. 다시 만날 기약도 못한, 입장차만 확인한 안 만나느니만 못한 만남이었다.

여론에 맞서 거부권 카드를 쓰는 데도 여전히 거침이 없다. 대통령실은 해병대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90여분 만에 “엄중 대응”을 예고했다. 윤 대통령이 또 격노한 듯하다. 대통령실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게 우선이라지만 여론은 다르다. 특검법 찬성 여론이 반대의 3배가 넘는다. 공수처의 부족한 인력, 관련자들의 수사 비협조 등을 고려하면 특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에 실패하면 22대 국회에서 또다시 특검법을 발의할 것이다. 171석 민주당의 박찬대 원내대표는 “머뭇거리는 민주당과 결별”을 선언했다. 김건희 특검법 통과 등 여론을 등에 업은 민주당의 공세는 계속될 것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 제 기능을 못한 정부의 실상을 밝힐 특조위는 곧 활동을 시작한다.

윤 대통령의 총선 패배 대응 카드는 민정수석실 부활인 듯하다. 그는 김대중 정부가 민정수석실을 없앴다가 2년 뒤 부활시킨 데 대해 이해 가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본인이 2년 전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이 정치적 반대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며 폐지한 기구를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구성원이 100명에 달하는 매머드급 수석실이 될 것이라고 한다. 민심 청취를 위해서라는 설명은 믿기 어렵다. 대통령실에 ‘윤석열 로펌’을 만들어 자신과 배우자를 겨냥한 특검에 대비하고 레임덕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다. 총선 민심에 맞서겠다는 태도다.

대통령으로서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이루려는 의지가 강하다면 윤 대통령은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합리적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로 위기에 몰렸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중도실용’을 내세워 지지율 반등을 노린 것처럼 국정 기조와 운영 방식을 국민의 뜻에 맞게 수정하는 게 한 방법이다. 또는 야당이 반대할 명분이 없도록 탄탄하고 인기 있는 국정 의제를 새로 세우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총선에서 심판받은 국정에 대한 반성과 쇄신 노력이 필수다. 국정 의제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니면 야당과의 진정한 협치를 시도하는 것도 선택지 중 하나다. ‘내 맘대로’ 기조를 포기하고 야당에 총리 선임권을 넘겨줄 정도의 결심이 필요하다.

실패한 대통령이 되지 않으려면 윤 대통령은 내키지 않아도, 필요에 의해서라도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엄혹해진 현실에 맞춰 본인의 생각과 행동을 조정하려는 의지도 노력도 안 보인다. 외면당할 정도로 지지율이 저조해도, 야당과 싸움만 하다 임기를 마칠 판인데도 별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절박하지 않으니 굽힐 생각도 없는 듯하다. 10일이면 윤석열 정부 출범 2년이 된다. 정권은 아직 3년이나 남았다. 그리고 30일부터 22대 국회가 시작된다. 야당은 힘을 앞세울 것이고, 민심도 윤 대통령을 감쌀 생각은 없어 보인다. 목련이 필 때 치러진 총선은 참패로 끝났다. 이제 봄꽃은 지고 윤 대통령의 시련은 시작된다.

박영환 정치부장

박영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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