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자주국방의 길 병영문화 개혁에 있다

2003.10.01 18:38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방부 앞대문 기둥에는 ‘자주국방’이라고 쓰인 큰 놋쇠 간판이 붙어 있어서 광채가 나도록 닦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의 자주국방은 ‘무기는 반드시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서 재력만 뒷받침되면 쉽게 가능할 것 같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세계 도처에서 보아왔듯이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하에 있는 나라로서 그들의 국가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내세워 실천함은 정권의 존립마저 흔들릴 수 있을 정도의 큰 위험이었다.

박정희 정권이 쓰러진 것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우리 국민들의 끈질긴 항쟁과 청년학생들의 거룩한 희생의 결과에 의한 것이었지만, 보이지 않게 작용한 미국의 정보역량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박정권은 무너졌지만, 우리가 그렇게도 갈망하던 민주주의는 오지 않았다. 더 잔악한 정부가 들어서서 암흑의 독재시대는 더 참담히 계속되었다. 당시의 상황에서 미국이 진정한 맹방으로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관심을 가졌다면 광주학살의 비극을 그렇게 수수방관, 방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국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말 잘 듣는 정부가 훨씬 더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작전권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살을 감행했던 일당이 그들의 한마디만으로도 꼼짝 못할 숭미주의자들이었음을 환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냥 묵인했다 할 수 있다. 맹방 운운은 미국의 국익과 합치되었을 때만의 이야기다.

참여정부는 예산국회를 앞두고 뜬금없이 ‘자주국방’을 내세우더니 국방비를 대폭 증액했다.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봐서는 ‘무기를 우리 돈으로 충분히 구입한다’는 단순한 주장으로, 부시 정부의 필요와 요구에 충분히 응함으로써 그들의 환심은 사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런 발상이야말로 반자주국방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우선 북한으로 하여금 군비 확장의 구실을 주어 무한 무기경쟁을 부추김으로써 통일의 지향과제인 군비경쟁의 사슬을 끊는 데 악영향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주름살을 깊게 할 것임을 바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무기체계에 관련된 물리적 군사력을 강화한다는 의미의 자주국방 선언은 국가 정책과 전략만 노출키고 우리의 경제를 밑빠진 독으로 만들어 세계의 무기상들만 배불릴 뿐 백해무익하다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아무도 간섭이 불가하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러나 무한대적 역량을 동원할 수 있는 진정한 자주국방은 의식과 문화면에서 찾아야 한다. 새로운 정보화시대가 요구하는 자주적인 군사사상과 군사제도를 정립하여 자주국방의 기본틀을 바로세워야 한다.

그 가장 시급한 과제가 친일세력들과 독재 옹호세력에 의해 잘못 형성된 생명경시, 인권부재, 간부 특권의식의 극단적 권위주의적 군대문화를 뿌리뽑아 민족적 자존심과 자신감에 넘치는 자주적 군대문화를 새롭게 뿌리내리는 일이다.

당면한 이라크 전투부대 파병문제도 우리 민족의 평화를 사랑하는 ‘홍익인간’ 사상을 근간으로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우리의 군사전통과 사상, 그리고 헌법정신을 기준 삼아 진정한 국익에 입각하여 자주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우리 장병들의 마음 속에 진정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우러나올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 마련이 당면한 자주국방의 1차적인 과제이다. 기왕에 증액된 국방비는 너무나 열악한 병영의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데 집중 투자해야 한다. 병영생활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배려함으로써 우리 군대에 대한 돈독한 애착을 갖게 하는 것이 곧 진정한 자주국방에 이르게 하는 지름길임을 명심하자.

〈표명렬/예비역 준장·군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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