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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제도, ‘적정가격’ 개념 바꿔야

2019.02.01 18:09 입력 2019.02.01 18:12 수정
김용창 서울대 교수 지리학

얼마 전 표준주택가격 공시를 두고 논란이 많다. 하지만 공시가격 제도의 본질을 잘 구현할 수 있는 정상화 측면에서의 논의는 부족하다. 그간 국내 부동산과 관련한 언론보도와 여론조성 과정에는 고질적 프레임과 나쁜 습속이 있다. 세금폭탄론을 비롯하여 정책의 부정적 효과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거나 일부 대상에게만 적용되는 것을 마치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결국에는 부동산 부자의 입장과 논리를 관철하는 꼴을 취하는 것이다.

[기고]공시제도, ‘적정가격’ 개념 바꿔야

이번에도 예의 폭탄논리 개발에 여념이 없지만 금번 표준주택 공시가격 결정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첫째, 그동안 단독주택이 공동주택에 비해 현실화율이 매우 낮아 불균형이 컸었는데 이를 개선했다. 특히 서민이 거주하는 공동주택에 비해 비싼 단독주택이 아주 낮게 평가되던 것을 바꾸었다. 둘째, 동일한 주택유형 내에서도 값이 비싼 주택일수록 낮게 평가됨으로써 서민이 상대적으로 세금을 더 부담하는 조세 역진성이 오랫동안 방치되었는데 이를 개선했다. 셋째, 전체 표준주택의 98.3%를 차지하는 중·저가 주택에 대해서는 점진적 현실화를 선택함으로써 서민층의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공시가격 운용방향을 설정했다. 마지막으로 공시가격 현실화를 통해 부동산과 다른 경제부문 사이에 있던 이익향유의 왜곡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을 텄다.

이번 개편을 통해 부동산 유형·지역·가격대별 불균형 심화 추세를 개선하고, 정책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높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공시가격 제도의 근본적 기능 회복을 위해선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부동산가격 공시제도의 기본방향을 바꿔야 한다. 시장현실을 반영하는 객관적인 가격을 전문가를 통해 국토부가 산출·제공하고, 정부는 시장환경 변화에 따른 적정공시율을 적용해 공시하거나 정부 각 부처의 정책목적에 따라 적용률을 달리하는 제도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률적으로 “토지, 주택 및 비주거용 부동산에 대하여 통상적인 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 성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인정되는 가격”으로 정의돼 있으나 현실에서는 시세의 80% 이하로 책정되는 공시제도의 현재 ‘적정가격’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 감정평가에 관한 규칙의 시장가치처럼 엄격하게 정의된 시장가격 개념을 적용하고, 가격 산출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보장함으로써 보다 더 시장현실을 반영한 가격을 공시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동산시장의 거래지표, 보상목적의 평가, 조세의 과표, 각종 복지행정의 기준 등 서로 충돌하는 60여개 행정목적을 수행해야 하는 공시가격 기능을 충족시킬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시장가격은 자원배분의 신호체계이기 때문에 이 정보가 왜곡되면 자원배분의 왜곡을 가져온다. 공시가격 제도의 정상화가 중요한 이유이다. 종래의 공시가격 왜곡은 부동산 보유와 거래에 따른 부담을 작게 함으로써 부동산 부자의 불로소득을 증가시켰고, 부동산이익집단의 카르텔을 공고화했다.

개혁군주 정조가 지은 <홍재전서> 책문에는 국토자원의 효율적 관리와 정책을 위해 지리가 정치의 근본이 돼야 하며, 토지정책과 조세 및 부역 등을 균등하게 처리하는 데 판적관리가 중요하니 합리적인 지리대책과 판적대책을 세우라는 내용이 있다. 판적은 오늘날로 보면 건물과 토지, 주민 등에 대한 관리대장이다. 가격은 물론 조사·평가 과정에서 용도지역, 도로조건, 토지이용상황, 건물구조 등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공시가격 제도는 정조가 주문한 현대판 지리대책과 판적대책의 일환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시가격 제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다양한 국토정보를 해마다 갱신하는 시스템으로 자리하면 국가정책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제도가 될 것이고, 종합 국토정보로서 효용성도 더 높아질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공시가격은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도 않다. 공시가격 제도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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