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피해자다움’ 배격하고 권력형 성폭력 경고한 ‘안희정 유죄’

2019.02.01 18:09 입력 2019.02.01 18:12 수정

지위를 이용해 비서에게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항소심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서울고법 형사12부는 1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던 1심을 파기하고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10개 범죄혐의 가운데 한 번의 강제추행만 제외하고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위력’의 의미를 협소하게 해석하고 ‘피해자다움’이란 왜곡된 신화에 매몰돼 모든 혐의를 무죄로 본 1심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을 충실히 반영한 이번 판결은 권력형 성폭력에 엄중한 경종을 울린 이정표적 판결로 기록될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한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안 전 지사가 현직 도지사이자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로서의 ‘위력’을 이용해 피해자 김지은씨와 성관계를 했다고 판단했다. ‘업무상 위력’이 반드시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유형적 위력’일 필요는 없다고도 했다. ‘위력이 존재는 했으나 행사되지 않았다’는 1심을 부정한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돼 신빙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안 전 지사 측이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을 근거로 김씨 진술의 신빙성을 깎아내린 데 대해선 “피해자의 성격이나 구체적 상황에 따라 대처는 다르게 나타난다. 변호인 주장은 정형화한 피해자라는 편협한 관점에 기반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씨는 선고 직후 “말하였으나 외면당했던,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 저의 재판을 지켜보았던 성폭력 피해자들께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그를 비롯해 성폭력을 고발한 피해자들의 용기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이들의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는 한국 사회에 도도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미투 운동의 본격 시발점이 된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가해자 안태근 전 검사장은 ‘인사보복’을 한 혐의로 최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극단 단원들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도 앞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의 진술에 귀 기울인 법원의 잇단 판결은 의미가 크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생을 걸고 성폭력과 맞서 싸우는 피해자들이 외려 꽃뱀이나 거짓말쟁이로 음해당하는 등 2차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성차별적 권력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권력형 성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일상에 만연한 차별과 폭력을 인식하고 이에 분연히 저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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