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 원폭 피해자 동포 간담회를 시작으로 공식 일정에 들어갔다. 2박3일의 방일 기간 중 윤 대통령은 초청국 자격으로 참가하는 G7 확대 정상회의에서 식량·기후변화 등 글로벌 의제에 대한 기여 의지를 밝히고, 한·미·일 정상회담에선 안보·경제 분야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21일 한·일 및 한·미·일 정상회담을 갖는다. 올 들어 세 번째인 한·일 정상회담에선 셔틀 외교 복원에 이은 경제·문화 등 협력 확대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과거사 문제에 진전된 발언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미·일 정상회담에선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군사 정보 공유, 역내 공급망 문제 등이 주요 의제로 거론된다.

이번 G7 정상회의의 최대 관심사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공동 대응의 수준이다. ‘역사적 수준’의 대중 공조를 꾀한다는 관측들이 나온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전쟁 능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 중국에 대한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 등이 공동성명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 미국 등 서방 주요국들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는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중국을 최대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지만 전면적 관계 단절(디커플링)이 아닌, 경제적·외교적 위험 축소(디리스킹) 기조로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반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이 지난 1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동했고, 다음주에는 양국 상무장관이 워싱턴에서 통상 현안을 논의하기로 하는 등 양국 간 소통도 본격화하고 있다. 독일·프랑스도 중국과의 정상 외교를 통해 상황 관리에 나선 상태다. 유럽연합(EU)은 전체 수출의 7%, 수입의 20%를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절연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미묘한 기류 변화가 이번 히로시마 회의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앞장서 왔고, 그 결과 ‘중국 리스크’는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번 회의에서 한·미·일의 군사정보 공유가 합의될 경우 한·중관계에 추가 악재가 될 수 있다.

한국이 주요국들의 대중 태도 변화에 주목하지 않은 채 가치 외교만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된다. 국익을 최우선 가치로 놓고, 세심하고 전략적인 외교를 펼쳐 위험을 줄여나갈 시기다. 윤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기간 리스크를 키울 수 있는 발언을 삼가고 방일 이후 대중국 관계 개선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