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과학자가 존경받으려면

2000.07.27 19:47

올해 제33회 ‘과학의 날’ 행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다가오는 지식정보시대의 경쟁력은 과학기술에 의하여 좌우되므로, 앞으로 과학기술자를 우대하는 정책을 펴서 우수한 인력이 과학기술 부문에 유입되도록 힘쓰겠다고 하였다. 이같은 의지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내년부터 과학기술 훈·포장제를 신설하기로 하는 등 과학기술자의 사기진작을 위한 정책들을 실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일선에서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과학기술자들의 표정이 이러한 정책 덕분에 별로 밝아진 것 같지는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어온 원칙없는 정부출연연구소의 구조조정, 연구개발의 특성도 모르면서 투자에 비하여 성과가 없다고 비판만 해대는 ‘높은 양반’들, 그리고 획일적으로 강요되는 최근의 정년단축 움직임 등 과학기술자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거대한 바람에 이래저래 시달리다가 이제는 무기력하게 포기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자들은 의사나 약사처럼 조직화된 힘도 없고, 사회의 중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어서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데 커다란 벽을 느끼고 있다. 중국이나 여러 선진국처럼 과학기술자가 국가의 많은 중요직책을 맡는 것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소위 직능대표라는 전국구 국회의원 중에 여야를 통틀어 과학기술계의 대표로 추천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또한 행정부를 보면 일본만 해도 행정고시보다 기술고시 출신의 공무원이 훨씬 많은데 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고위직에는 행정고시 출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국민의 과학기술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부에는 국장급 이상의 기술직 공무원은 1명도 없다. 이러한 구시대적 조직문화를 가진 정부가 과학기술 행정을 좌지우지해 왔으니 과학기술자가 존중받기는 애당초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하지만 남을 탓하기 전에 과학기술계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부터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스스로 자긍심(自矜心)을 가져야 남들도 존중해주게 마련인데, 과연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자들은 그 동안 자신과 동료들을 충분히 존중해 왔는가. 필자가 보기에 이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우선 우리의 과학기술자들은 동료들의 업적과 능력을 인정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

예를 들어 같은 연구업적이라도 외국 학자의 논문을 인용하지 한국에서 이루어진 일은 무시하는 일이 많다. 오히려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비판하고 그 성과를 깎아 내리기 일쑤다. 이러한 현상은 아마도 국내에서 만큼은 자기가 그 분야 최고 권위자라고 인정받고 싶은 의식 때문인 듯한데, 이같이 편협하고 독선적인 태도는 과학기술자들의 전체적 권위를 실추시키고 있다. 자기만이 옳다는 아집 때문에 서로 의견이 다르면 진정한 학문적 토론보다 상호 비방으로 흐르기 쉽고, 연구과제의 평가와 선정 과정에서도 자기 주장만 끝없이 고집하여 비생산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많다.

이같이 동료들에게는 한없이 인색하고 엄격한 과학자들이 정부 관리나 언론에는 기준과 원칙도 없이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부 관리가 아무리 무리한 프로젝트를 요구해도 연구비만 준다면 너도 나도 하겠다고 달려들고, 언론에서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세계 최초’ ‘노벨상 수상감’이라는 과장 보도를 남발해도 바로잡으려는 사람이 없다. 과학에서는 진실과 정확성이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인데도, 목표달성이 불가능한 연구과제를 할 수 있다고 써내고 겉치레 홍보를 위해 틀린 기사 작성에 협조하는 부끄러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일은 과학자의 신뢰성에 금이 가게 하여 결국 그 권위를 실추시키게 마련이다.

이제는 동료끼리 서로 존중하면서 진정한 학문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원칙에 어긋나는 외부의 요구에는 과감히 “No”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의연한 행동을 통해서만 이 땅의 과학기술자들은 진정으로 존경받는 집단이 될 것이다.

〈오세정/서울대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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