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가야 하는 이유

2015.04.23 20:56 입력 2015.04.23 21:55 수정
김용현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박근혜 대통령이 5월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 대신 대통령 정무특보인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을 보낸다고 한다. 러시아는 박 대통령과 함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초청한 바 있다. 일단, 남북정상 간 조우는 불발됐다. 남북 간 강대강의 대결구도를 돌파할 수 있는 최적의 시나리오인 모스크바 남북정상회담이 사라진 것이다. 이로써 남북관계의 근본적 개선은 꽤 시간이 걸릴 듯하다.

[정동칼럼]박 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가야 하는 이유

정부는 박 대통령 방러의 경우 행사 특성상 남북 정상이 짧게 조우할 가능성이 높고, 남북 간 갈등의 골이 깊은 상황에서 ‘만남을 위한 만남’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걱정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 등 서유럽 주요 국가수반들이 불참하는 것도 영향을 줬다고 한다. 일단 박 대통령의 방러 불발로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됐지만, 정부는 윤 의원의 특사 파견으로 향후 남북정상회담을 타진하는 기회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는 듯하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박 대통령의 메시지를 북측에 전달하는 기회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김 제1위원장을 수행하는 고위급과 윤 의원 등 특사단 간 접촉이 이뤄진다면 성과라고 인식하는 듯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모스크바행 불발은 세 가지 점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첫째, 꽉 막힌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해 모스크바행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딱 한 번의 이산가족 상봉 성과밖에 없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금강산관광 재개, 5·24조치 해제 등 남북관계 현안들이 당국 간 샅바싸움 속에 한 발자국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8월15일 광복 70주년 행사는 그 의미를 잃어버린 채 남북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속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현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남북 최고지도자 간 대화 속에 통 큰 결단을 통한 현안 일괄타결밖에 없다. 대통령의 모스크바행이 필요한 이유다.

둘째, 30%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가야 한다. 성완종 파동으로 떨어진 지지율은 특별한 환경 변화가 없다면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돌파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남북정상회담이다. 물론 정상회담이 국내 정치의 돌파구로 활용되는 사태가 바람직하진 않다. 그러나 국내 정치와 경제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박 대통령 입장에서 이를 돌파할 수 있는 카드로 남북정상회담은 상당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가 이미 남북한 각각의 내부정치 영역으로 들어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남북관계의 근본적 개선을 통해 ‘통일 대박’을 실현하는 출발지로 모스크바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셋째, 박 대통령이 9월 중국 전승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라도 모스크바에 가야 한다.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 및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오는 9월3일을 전후해 베이징에서 기념대회, 열병식, 문화예술 행사 등을 할 계획이다. 이 행사에 박 대통령과 김 제1위원장이 초청받은 상태다. 한·중 간 협력 상황이나, 시진핑 주석과의 긴밀한 관계로 볼 때 박 대통령이 불참한다면, 외교적 부담이 매우 클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9월 중국 전승행사에만 참석할 것인가? 모스크바에는 가지 않고, 베이징에만 간다면 푸틴 대통령은 박 대통령과 한국 외교를 어찌 생각할 것인가? 베이징조차 가지 않는다면 시진핑 주석은 또 어찌 생각할 것인가? 국제사회에서 대범함과 거리가 먼 대통령으로 인식될 것인가, 외교 감각이 뛰어난 대통령으로 인정받을 것인가? 균형감 있는 대중, 대러 외교를 펼치는 차원에서도 대통령의 방러는 실현되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하긴 하지만 서둘러 박 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가야 한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남북관계의 근본적 개선을 위한 첫발을 내디디기 위해서다. 마침 오늘, 한·미연합군사훈련인 독수리연습도 끝난다. 북측도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 있다. 대통령의 5월9일 러시아 전승절 참석, 북측 고위급 대표단의 6·15공동선언 15돌 서울 기념행사 참석, 남북 최고지도자가 참석하는 8·15 광복절 남북 공동 기념행사 개최, 9월 남북 최고지도자 베이징 전승행사 참석, 봄날 꿈 같은 얘기일 뿐인가? 박 대통령의 모스크바행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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