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월드컵이 불안한 노숙자들

2002.01.23 20:29

평소 잘 아는 서울역 노숙자상담소 자원봉사자로부터 23일 전화연락이 왔다. 월드컵대회 기간동안 서울의 노숙자들을 지방으로 보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이냐는 것이었다. 전날 밤 야간상담을 나갔더니 노숙자들이 몹시 불안해 하더라며 “설마 그런 일이 생기겠느냐”고 되물었다.

서울시는 월드컵을 앞두고 22일 ‘거리노숙자 특별보호대책’이란 것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서울에서 경기가 열릴 때를 전후해 노숙자들을 지방 청소년수련원으로 보내 ‘특별연수’시킨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한마디로 외국인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지방으로 격리시키겠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숙자들을 강제로 격리시키는 것은 아니고 희망자에 한해 목욕도 하고 휴식도 취하면서 새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자원봉사자는 “세상이 싫어 쉼터에도 가지 않고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에게 월드컵이니 지방으로 가 있으라고 하는 건 지나친 처사”라며 “그들에게도 월드컵을 함께 맞이할 권리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월드컵은 분명 세계인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지구촌 축제다. 한국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만큼 깨끗하고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 어디를 가나 노숙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선진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들을 보고 손가락질하는 관광객들도 없다. 그 나라의 모습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비쳐질 모습을 걱정해 서울의 노숙자들을 지방으로 보낸다면 지방에서 월드컵 경기가 열릴 때엔 지방에 있는 노숙자들을 서울로 초청해야 하는 것인지. 이미 ‘세상 속’에 있지 못한 그들을 월드컵 때문에 ‘세상 밖’으로 다시 내몰아서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정유미기자·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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