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딱하게 된 교육부

2007.07.16 18:15

교육부와 대학의 ‘대입 내신분쟁’이 교육부의 완패(完敗)로 일단락됐다. “어떤 경우에도 내신 실질반영률이 50% 이상이어야 한다”던 교육부의 당초 기세는 온데간데 없고 “50%는 아니어도 좋으니, 제발 30%만이라도…” 하며 대학에 사정하는 처지가 됐다. 대학들은 그런 교육부를 향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간섭하지 말라”며 되레 윽박지르는 모습이다.

모든 것은 내신 다툼이 있기 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내신비중은 대학이 적당히 알아서 정하면 되고, 정부는 수용하는 것 외에 방도가 없게 됐다. 내신 1, 2등급을 만점 처리키로 한 서울대에 대해 “정부도 상응하는 조치를 면제하기 어렵다”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공언(公言)이나, “1조5000억원에 이르는 정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해 강력 제재하겠다”고 한 한덕수 국무총리의 발표는 공언(空言) 또는 허언(虛言)이 됐다. 대통령과 총리가 대입에 직접 개입했다가 망신만 당한 셈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교육부는 대학의 집단이기주의 때문이라고 둘러대고 싶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아니다.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에 대통령이 나서는데도 “아니되옵니다”라며 말리지 못한 교육부 책임이다. 왜 이길 수 없는 게임인가.

-말로만 “내신” 무너진 신뢰-

올해 처음 시행되는 새 대입제도가 발표된 것은 2004년 8월이다. 내신을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꾸고, 수능을 9등급화하는 내신 위주의 입시체제다. 이후 교육부와 대학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 게임이 끊임없이 계속됐다. 게임의 중심에는 언제나 특목고가 있다.

“내신 강화로 대입에서 불리하게 생겼으니 특목고에 갈 필요 없다.” “아니다. 대학은 어떻게든 우수학생을 선발하려 들 테니 내신의 실질반영률을 대폭 높일 수 없을 것이다. 가도 된다.”

새 제도 발표 후 이런 갑론을박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그해 서울시내 6개 외국어고의 경쟁률은 전년도 6.34대 1에서 4.07대 1로 떨어졌다. 내신 때문에 입시에서 불리할 것이라고 판단한 학생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교육부가 내신 실질반영률 50%를 실현하려면 이때 제도화해야 했다. 이번 내신분쟁에서 내놓은 실질반영률 계산공식을 그때 제시하고 “앞으로 내신계산법은 이것으로 통일한다”고 못박았으면 오늘날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이번 내신분쟁에서 교육부의 무기는 대학들이 내신 50% 반영을 지난해 국민 앞에 약속했다는 점이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때 50%가 무엇인지 분명히 하지 않은 맹점이 있다. 서울대(2007년)의 경우 내신 명목반영률이 40%, 실질반영률은 2.28%다. 명목과 실질의 이 괴리는 교육부도, 대학도, 수험생도 다 아는 사실이다. 지난해 대학들이 내신 50% 반영 약속을 했을 때 언론에서 “그것은 명목일 뿐 실질비율은 훨씬 적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때 교육부는 “개별학생의 당락에 어떤 전형요소가 얼마의 영향을 미칠지는 사전에 설명할 수 없으며, 오직 전형이 종료된 뒤 사후 측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던 교육부가 어느날 갑자기 “50% 약속은 실질반영률이므로 사전에 보장하라”고 윽박지른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이처럼 원칙 없이 오락가락하다 보니 대학과 붙었다하면 교육부는 판판이 깨진다. 2005년 6월 서울대는 2008 입시에서 본고사에 가까운 논술을 보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국에 논술 광풍을 가져오면서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란 악명을 낳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런데 서울대 발표 직후 당시 김진표 부총리는 “들여다보니 다양한 전형으로 뽑던데 좋더라”고 긍정 평가했다. 초기에 이래 놓았으니 나중에 아무리 “본고사형 논술은 안 된다”고 해보았자 먹혀들기 어려웠다. 지난해에는 외국어고 입시에서 거주지 지역 학생만 응시할 수 있게 하는 지역제한 방안을 불쑥 들고 나와 “당장 2008 입시부터 시행하겠다”고 했다가 반발에 부딪히자 2010년으로 시기를 미루기도 했다.

-입시제도 ‘뚝심’이 필요하다-

대입제도에 정답은 없다. 내신 강화가 지고지선(至高至善)이 될 수 없고, 수능·논술 또한 완벽한 측정 잣대라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과 신뢰성이다. 원칙을 제대로 정하고 한 번 정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나가는 뚝심이 필요하다. 이 간단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교육부를 보면 참으로 딱하다.

〈이종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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