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노란 리본 그리고 횃불

2009.06.01 17:58
박노승 논설위원

[경향의 눈]촛불, 노란 리본 그리고 횃불

국민장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찰 버스로 서울광장의 문을 닫아건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대통령은 이런 의문에 빠져 있을지 모르겠다. 경제를 살리고 법치가 살아숨쉬는 번듯한 나라를 만들어보겠다는데 왜 사람들은 이럴까. 정치 보복, 정치적 타살이라 하는데 뭐가 그렇다는 것인가. 검찰이 알아서 한 수사일 뿐이지, 내가 그렇게 하라고 검찰에 지시한 증거라도 있는가.

이 대통령에겐, 죽은 줄로만 알았던 노무현이 이런 식으로 되살아난 이유도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듭되는 실정과 개혁 실패로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렸던 대중들이 왜 그를 다시 불러세웠을까. 서민적 향수, 연민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 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아마도 이 대통령의 뇌리에는 이런 생각들로 꽉 차 있을 것이다. 그 나름의 노여움도 켜켜이 쌓여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급박한 한반도와 盧추모 민심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북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정세마저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이 대통령의 설명까지 들을 필요도 없다. 진짜 남북 간 심각한 충돌이 벌어질 조짐이 없지 않다. 북은 연이은 미사일 위협에 뒤이어 서해상의 전쟁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고, 미국은 미국대로 전쟁 불사 이야기를 흘리고 있다. 전임 정부의 햇볕정책 실패 때문이든,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 파탄 때문이든 한반도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은 있는 현실 그대로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게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지난해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이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했다. 그가 그때는 그리 했을 것으로 믿고 싶다. 그러나 그후 그의 행적을 보면 말에 진정성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아침이슬’을 부를 때의 순수함이 사라졌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그는 촛불이 사그라지자마자 앙갚음이라도 하듯 시위 주도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였다. 그리고 부자 감세, 미네르바 구속, 용산 참사, 경인운하 착공, 4대 강 정비 사업 등 국민들의 화를 돋울 만한 일들을 골라 밀어붙였다. 촛불시위를 보면서 소통 부족을 반성한다고 했으나 말로만의 반성에 그쳤다.

이번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전국이 불타오를 때 이 대통령이 반응을 보인 것은 딱 한 번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중하게 모시라”고 했다. 그것뿐이다. 영결식장에서도 그의 생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단서는 하나도 없다. 그후 ‘떠나간 분의 뜻을 잘 받들자’는 의례적인 발언 외에는 아무 말도 내놓지 않았다.

이제는 촛불 때처럼 이 대통령이 다시 청와대 뒷산에 올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다. 경찰 버스가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데 그도 뒷산에 오를 필요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명박산성’의 구중궁궐을 쌓는 것으로 정권 안보는 충분하다. 저항은 다소 있겠지만 결국은 촛불 때처럼 수그러들고 말 것이다. 시간만이 약이다. 어느 누가 정부 강공에 용뺄 재주 있나. 경제를 살리고 국가안보를 챙기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면 된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도 많다. 그 동안도 이리저리 허송세월한 것이 얼마인가. 6월 국회에서는 미뤄둔 입법을 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이 대통령의 행보가 바쁘지 않을 수 없다.

말뿐인 소통·화합은 분노 못꺼

그렇다면 시민들은? 서울광장의 함성은 사라졌지만 그들 가슴 속에 담아둔 분노까지 이대로 묻어놓을 것 같지는 않다. 역사박물관 내 관제(官制) 분향소보다는 그들 스스로 설치한 대한문 앞 분향소에, 경복궁 영결식장보다는 서울광장 노제에 더 마음을 주었던 시민들이 아니던가. 집권 측이 소통과 화합을 말하지만 그것이 말뿐이라는 것은 이미 눈치를 챈 지 오래다. 이 대통령이 제 갈 길을 좇아 힘을 쓰면 쓸수록 시민들의 분노는 더 크게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는 제2, 제3의 촛불과 노란색 리본으로 피어오르고 결국에는 성난 횃불로 타오르지 말란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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