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잡이를 다시 기다리며

2013.09.30 21:50 입력 2013.10.01 10:04 수정

#사례 1

사정바람이 한창이던 2002년. 김종빈 대검 중수부장실 전화기는 조용한 날이 별로 없었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업·홍걸씨가 나란히 검찰 수사를 받던 시기였다. 당시 총장은 이명재씨다. 박지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만만한 김 부장에게 주로 전화를 걸었다. 둘의 통화내용은 미뤄 짐작할 것들이다. 주로 ‘어떻게 검찰이 이럴 수가 있느냐’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다음날 조간신문에는 김 대통령 아들의 비리 혐의가 대문짝만하게 1면을 장식했다. 이 총장은 청와대의 외압을 ‘맨몸’으로 막았다. 수사팀이 흔들리지 않고 진실 규명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도 이 총장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향의 눈]칼잡이를 다시 기다리며

#사례 2

이명박 정권 첫 검찰총장은 임채진씨다. 청와대는 KBS 정연주 사장 문제로 골치를 앓았다.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정 사장이 “못 나가겠다”며 버텼기 때문이다. 검찰이 이른바 ‘똥볼’을 건네받았다. 임 총장이 소집한 대검 간부회의에서 격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당시 회의에 첨석한 한 간부는 “청와대가 인사로 풀 문제를 검찰더러 해결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 국민들이 보면 검찰을 뭘로 알겠느냐는 얘기가 많았다”고 했다. 그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먼지떨이식 수사를 했지만 나온 게 없었다. 고민 끝에 KBS가 국세청과 벌인 소송에서 법원의 중재로 합의 조정한 걸 문제삼아 정 사장을 배임 혐의로 걸었다. 예상대로 법원에서 보기좋게 무죄가 나왔다. 검찰은 만신창이가 됐다.

검찰총장이 어떤 자리인지를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얘기다. 같은 사건이라도 누가 지휘하느냐에 따라 수사결과는 180도 달라질 수 있다. 검찰총장은 그런 자리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어제 퇴임식을 갖고 6개월 만에 중도 하차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혼외 아들 의혹에 대해 끝까지 무고함을 강조했다. 그는 퇴임식장에서 부인과 딸이 지켜보는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남편과 아빠로 살아왔다”고 했다. 그를 둘러싼 논란의 쟁점은 두 가지다. 개인의 도덕성과 검찰의 중립성 문제다. 도덕성은 사정기관 최고책임자라는 자리를 감안할 때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다. 이는 보도 내용이 전적으로 사실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 과정에 언론이 지켜야 할 최소한 취재·보도 윤리와 개인의 사생활 보호장치가 제대로 가동됐는지는 논외로 하자. 그의 도덕성 문제로 특정인이 피해를 입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채 총장 사퇴를 둘러싼 ‘찍어내기’ 의혹과 검찰의 중립성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검찰권 사유화가 미칠 부작용은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명박 정권의 검찰 수난사가 이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채동욱 총장 사퇴는 최악의 선례를 남겼다. 무소불위의 검찰권도 정치권력이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확실한 메시지다. 총장은 임기 2년이 법으로 보장돼 있다. 그는 후보추천위원회의 검증을 거쳐 임명된 첫 총장이라는 상징성도 있다. 검찰 중립성을 보장하는 법·제도는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됐다. 누가 후임 총장이 되든 청와대 눈치를 살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경고다. 검찰의 중립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간 거쳐간 39명의 역대 총장 중 검사들은 이명재씨를 가장 좋아한다. 소신껏 수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그는 짐보따리가 가벼운 사람으로 유명하다. 취임할 때도 손가방 하나만 달랑 챙겨 왔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자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지냈다는 뜻이다.

채동욱씨의 운명은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일지 모른다. 특수통이 총장에 오른 것은 이명재씨 이후 12년 만이다. 청와대는 타협에 익숙지 않은 ‘칼잡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 자기 목에 칼을 들이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상황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나. 이명재씨와 마찬가지로 채동욱씨도 검란이 만든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총장이 된 뒤 “단 하루를 하더라도 총장답게 살아야 한다”고 부탁했다. 검찰이 처한 현실이 그랬다. 그도 누구보다 이를 잘 알았다. 박근혜 정권의 치부인 국정원 댓글사건 처리를 놓고 청와대와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가 지난 6월 느닷없이 천안함 잔해가 보관된 평택 2함대사령부를 찾았다. 국정원 댓글사건을 기소한 뒤 청와대의 불편한 시선을 의식한 듯 보였다. 하지만 부질없는 노릇이었다.

채동욱씨는 떠났다. 벌써 후임 총장 하마평이 한창이다. 그러나 결과는 뻔하다. 청와대는 자기 맘대로 부릴 수 있는 ‘약골 총장’이 편하다. 역사적으로 그랬다. 검찰엔 다시 오욕의 역사가 기다리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악몽이 되살아날 조짐이다. 언제쯤 제대로 된 ‘칼잡이’ 총장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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