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에 감염된 교육

2013.09.23 21:26
신동호 논설위원

사회구조적 병폐 원인은 교육의 실패에 있고, 교육 실패의 배경에는 사회구조적 병폐가 자리하고 있다. 모든 문제는 교육 문제로 귀결되고, 교육 문제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교육은 정치 문제이고 경제 문제이고 사회 문제이며, 지금은 역사 문제가 되어 포연 자욱한 ‘역사전쟁’의 무대로 변해 있기도 하다. 어느 곳에나 있는 세균처럼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나 병폐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결과가 되기도 하는 문제로 가득한 것이 교육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실제로 세균이라는 단어는 요즘 교육 분야에서 널리 회자되기 시작한 용어이기도 하다. 비록 다른 의미로 쓰는 것이지만 교육 용어로서는 매우 자극적이라 눈길을 끈다. 근자에 세계 각국이 열을 올리고 있는 교육개혁의 일정한 기조와 방향성을 지칭하는 신조어, GERM(Global Education Reform Movement의 약자로 세균이라는 뜻)이다. 핀란드 교육정책 전문가 파시 살베리가 미국·영국·일본 등 거의 모든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을 이렇게 부른 뒤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모양이다. 국내에서도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교바사)’ 대표 같은 이가 “지금까지 많은 나라들이 무분별하게 교육개혁의 세계적 유행(GERM)을 따랐다가 이것이 무서운 세균처럼 교육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계심을 높이고 이의 퇴치를 위한 해독제 모색에 나섰다”며 이 용어를 소개한 바 있다.

[경향의 눈]세균에 감염된 교육

GERM은 세균처럼 번식력이 강하고 독성 또한 큰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 대표의 말을 좀 더 빌리면 GERM은 “경쟁·비교·선택 등을 통한 시장주의, 교육의 표준화, 표준화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하는 징벌적 책무성 정책 등”을 기본 원리로 하고 있다. 마치 우리 교육 현실을 꼭 집어서 지적한 듯하다. 경쟁적 입시제도, 일제고사와 수능, 고교 및 대학 서열화 등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교육이 바로 GERM이라는 세균에 지독하게 감염된 중증 환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어제 교육부가 발표한 2015~2016학년도 대입제도 확정안에서도 감염된 ‘세균’의 위력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수시 모집 논술전형에도 여전히 선다형 시험인 수능 결과를 반영케 한 점이다. 물론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복잡하게 느껴졌던 최저학력 표시 방법으로 백분위를 금지하고 등급만 표시하게 한 것은 ‘간소화’의 한 방안이지만 수능 결과를 어떻게든 평가에 포함시킴으로써 수시 모집 원래 취지조차 지키지 못한 점은 유감이다. 표준화 시험 성적으로 학생을 줄 세우는 ‘세균’의 퇴치는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수능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뽑는 정시 모집이 있는데도 특기와 소질을 보는 수시 모집에서 여전히 성적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현 정부의 교육 공약인 ‘꿈과 끼를 끌어내는 행복한 교육’의 의지를 의심스럽게 하기도 한다.

물론 교육은 앞에서 말했듯이 교육 논리만으로 풀 수 없는 복잡다단한 현실 문제를 안고 있을 것이다. 세균에 심하게 오염된 병변을 일거에 도려내다가는 숙주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법이다. 최근 한국사 수능 필수화와 교학사 교과서 검정 문제를 둘러싼 정부의 대응을 보면 교육이 교육부 차원 너머에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교육부가 이런 여러 가지 현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과감하게 손을 댈 엄두를 못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세계 교육계에 일고 있는 문제의식, GERM을 주목할 만하다. 현재 GERM의 해독제 모색에 파시 살베리를 비롯해 앤디 하그리브즈와 데니스 셜리, 다이안 래비치 등 세계 교육 관계자들이 나서고 있다. 호주·뉴질랜드의 ‘파이트GERM(Fight the GERM)’, 미국의 ‘페어테스트(Fair Test)’ 등 시민운동도 펼쳐지고 있다. 싱가포르, 캐나다 온타리오주를 비롯한 일부 주,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이 GERM이라는 세계적 유행을 따르지 않은 핀란드 교육개혁의 성공 원리를 바탕으로 ‘제4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도 한다.

국내 현실은 어지럽다. 교육계가 보수·진보 진영으로 갈려 서로 다른 개혁을 주장하고 있고, 정부는 5년 시한의 ‘민원처리식 정책 개보수’에 급급한 모습이다. 교육의 뚜렷한 방향도 없는 듯하고, 장기적인 목표나 큰 그림도 보이지 않는다. GERM 독성에 대한 이해와 경각심 전파에 노력하는 교바사 이찬승 대표는 땜질식 처방 이전에 10년, 20년 후의 교육 비전을 먼저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현 정부의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 방안(시안)’의 일부에 대한 이번 확정안을 보면서 이 대표의 말에 더욱 공감할 수밖에 없다. 교육 부문에서 30년, 50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10년, 20년의 장기 계획이 왜 안 나오는 것일까. 세균을 완전히 박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감염 실태와 그 폐해를 알리고 적절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암으로 악화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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