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야심

2015.07.06 21:23 입력 2015.07.06 21:35 수정
신동호 논설위원

[경향의 눈]경기도의 야심

“그동안 우리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전국 전력 소비 1위, 외부 의존도 70%라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또한 송전탑 갈등과 원전 사고 등은 우리 시대의 에너지 시스템이 더 이상 안전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연정의 정신을 살려 새로운 에너지 상생의 길을 펼치고자 한다.”

놀라운 일이다. ‘경기도 에너지 자립 공동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지난 6월25일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강득구 경기도의회 의장,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염태영 수원시장(경기도 시장·군수협의회장) 등이 ‘경기도 에너지 비전 2030’을 선포한 뒤 ‘경기인 일동’의 이름으로 발표한 것이다. 참여 인사를 보면 남 지사 말고는 모두 야당 소속이거나 출신임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2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추천한 이기우 전 의원을 사회통합부지사로 임명하면서 출범한 ‘경기연정’이 바야흐로 본궤도에 오른 느낌이다.

이뿐만 아니다. 경기도가 이날 밝힌 에너지 비전은 현재 29.6%인 전력자립도를 2030년 70%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에너지 효율 혁신을 통해 수요를 20% 줄이고 현재 6.5%에 불과한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로 확대하며 에너지 신산업을 적극 육성하는 등 구체적인 이행 전략도 담았다. 비전대로라면 그 과정에서 20조원 이상의 에너지 신산업 시장이 조성되고 15만개의 관련 일자리가 창출되며 2030년까지 수명연장 논의가 필요한 노후 원자력발전소 11기 중 7기를 대체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경기도는 전망한다.

그야말로 ‘야심 찬 목표’다. 에너지 자립 선언은 경기도 주요 기관과 31개 시·군만이 아니라 기업, 주민, 시민사회의 참여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통합의 정치와 협치가 아니고서는 이런 목표 설정은 물론이거니와 실천을 보장하기가 쉽지 않다.

원자력계로서는 지난 6월이 ‘운명의 달’이라고 할 만했다. 원자력 정책 방향을 바꿀 만한 대형 변수가 줄줄이 예비돼 있었다. 12일 고리 원전 1호기 폐로 결정, 24일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준공식, 29일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의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최종 권고안 제출 등 37년간 묵혀둔 원자력계의 난제가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이 가운데 경주 방폐장 준공식은 ‘메르스 사태’를 이유로 석연치 않게 연기됐지만 바로 그 다음날 경기도가 ‘노후 원전 7기 대체’라는 더 강력하고 새로운 대안을 내놓았다.

경기도의 2030년 에너지 비전은 지난 6월8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정부안은 2015년부터 2029년까지 매년 평균 2.2% 증가하는 전력 수요와 전력 예비율 22%를 맞추기 위해 150만㎾급 원전 2기를 추가로 짓는다는 게 골자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석탄을 줄이고 원전, 신재생 등 친환경 전원 비중을 늘렸다고 하지만 원전 증설을 위해 전력 수요와 예비율을 부풀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기도는 전력 소비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국에서 1위인 지방자치단체다.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지자체가 원전 7기를 줄이겠다는데 중앙정부는 되레 2기를 늘릴 궁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원전 의존 에너지 정책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은 지역에서 오히려 활발하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원전하나줄이기 정책을 실시해 200만TOE(석유환산톤) 절감 목표를 6개월 앞당겨 달성한 바 있고, 지난해 7월부터 2020년까지 전력자립도를 20%로 끌어올리는 등의 2단계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서울의 약속’을 통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40% 줄일 것을 국제사회에 공약하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6월30일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배출전망치(BAU) 대비 37%로 확정해 유엔에 제출했다. 37% 가운데 국외 감축분을 뺀 순수 국내 감축분은 25.7%다. 그것도 6월11일 공개한 4가지 시나리오(14.7, 19.2, 25.7, 31.3% 감축) 모두 후퇴한 안이라는 시민사회의 비난과 더 ‘야심 찬 목표’를 제시해달라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국제사회의 압박에 쫓겨 기존 목표를 상향조정한 모양새다. 물론 이 감축안을 따르더라도 원전 비중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야심 찬 목표는 기후변화 시대를 주도하는 핵심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리더십도, 궁극적인 국익도 거기에서 나온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야심이 과한 것은 위험하지만 없는 것은 너무 슬프다. 좀처럼 야심을 보이지 않는 정부보다 야심 넘치는 경기도에 기대를 걸고 싶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