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대책보다 중요한 것

2012.07.01 21:14
김종훈 경제부장

ㄱ씨는 2007년 경기 성남시 분당구로 이사했습니다. 32평 아파트를 7억원 주고 샀는데, 당시 돈이 모자라 3억원을 은행에서 빌렸다고 합니다. 매월 내야 할 이자만 150여만원이었지만, ㄱ씨는 아내가 직장을 다녔던 터라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내심 “집값이 좀 뛰면 이자야 무슨 상관인가”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값이 하락을 거듭하더니, 요즘 5억원 안팎으로 떨어졌습니다. ㄱ씨는 최근 은행으로부터 원금 상환 압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일부라도 갚으라는 것인데, 갑작스럽게 목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막막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지난해 ㄱ씨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ㄱ씨는 “집을 팔려고 해도 은행 빚을 갚으면 손에 1억여원 남짓 쥐게 된다. 한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말했습니다.

[아침을 열며]집값 대책보다 중요한 것

“집값이 많이 떨어졌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입니다. ‘부동산 침체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복병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도 들립니다.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의 ‘깡통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고,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5월 말 현재 0.85%로 5년7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습니다. 집단대출 연체율은 1.71%로 급증했고, 4월 말 현재 은행의 가계집단대출 잔액은 102조4000억원에 이릅니다. 내년부터 원금 상환을 시작해야 하는 주택담보대출자는 전체의 42%로 규모도 128조원에 이릅니다.

KB국민은행은 전국의 2만1600가구를 대상으로 매월 주택가격을 조사해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 통계를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9월 이후 지난 4월 현재까지 전국의 집값은 9.8% 올랐습니다. 전국의 아파트 값은 같은 기간 13.3% 뛰었습니다. 집값이 떨어진 곳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입니다. 서울이 아파트 가격을 기준으로 마이너스 3.8%, 경기도가 마이너스 5.7%, 인천이 마이너스 7.4%였습니다. 그런데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모두 큰 폭으로 뛰었습니다. 부산은 53.5%가 올랐고, 경남 47.8%, 전북은 40.8%나 아파트 가격이 올랐습니다. 나머지 지방 광역시·도 모두 20~30%나 집값이 올랐습니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의 집값이 뛴 것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 때문입니다. 정부는 “거래가 너무 안된다”며 지금까지 20차례 가까이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이라는 게 대부분 부동산 규제들을 푸는 일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빼고 거의 대부분의 규제가 풀렸습니다. 양도세중과·후분양제는 폐지했고, 분양가상한제는 무력화됐습니다. 투기지역은 서울 강남 3구를 끝으로 모두 해제했고, 국토의 20%에 달하던 토지거래허가구역의 대부분 역시 풀어줬습니다.

정부가 집값 부양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주택매매 거래량은 지난 5월의 경우 6만8047건이었습니다. 이는 2009~2011년 3년간 전년 동월 평균치(7만1614건)의 95% 수준입니다. 지방은 오히려 1.8% 늘었습니다. 수도권(-15%), 특히 강남 3구(-29.6%)가 거래수준이 매우 낮습니다.

정리해보면 집값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2008년 9월 이후 평균 5.2% 하락했습니다. 특히 크게 떨어진 곳은 과거 집값이 큰 폭으로 뛰었던 경기 과천(-21.3%), 분당(-17.7%), 일산(-14.0%), 서울 강남구(-7.1%) 등입니다. 지금 집값은 과거 많이 올랐던 곳이 떨어지고, 거의 오르지 않았던 지방 집값이 크게 뛰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수도권은 거품이 꺼지고 있고, 지방은 오히려 거품이 끼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수도권 집값은 시장에 맡겨야 합니다. ‘제2의 ㄱ씨’가 나오지 않도록 거품을 키우고 있는 지방 부동산시장에 대해선 규제 빗장을 다시 채워야 합니다. 또 거품 형성기에 집을 사는 바람에 파산위기에 놓여 있는 중산층을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양질의 일자리와 올바른 소득 분배입니다.

정부는 5월 말 현재 전체 취업자 수가 사상 처음으로 2500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20~30대 취업자 수가 유일하게 후퇴했고, 50세 이상 취업자는 무려 56만여명 늘었습니다. 정규직은 줄고, 일용직은 늘었습니다. 제조업 취업자 수는 지난해 8월부터 계속 줄었고, 자영업자는 늘어났습니다. 경쟁력 없는 자영업자 증가는 ‘개인부채’를 키우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마땅히 할 일 없는 은퇴자들이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실질 최저임금은 최근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보다도 뒤집니다. 노동연구원은 1일 소비자물가지수(CPI, 2005년 기준)를 반영한 시간당 실질 최저임금 수준을 내놓았는데 한국은 시간당 3.06달러였습니다. 프랑스(10.86달러)의 28%, 일본(8.16달러)의 38% 수준입니다. 영국이 7.87달러였고, 스페인도 4.29달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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