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퇴행과 ‘양들의 저항’

2014.12.28 20:44 입력 2014.12.28 21:06 수정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4·16 세월호 참사, 서울시공무원 유우성씨 간첩 증거조작 사건, 윤모 일병 사망 사고,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아침을 열며]역사의 퇴행과 ‘양들의 저항’

2014년은 숨통이 턱턱 막히는 한 해였다. 답답하고 침울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멍하게 별 하나 없는 검은 하늘을 봤다.

올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21세기가 맞나?”였다. 한국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이런 대형 사건들이 1년이란 짧은 시간 안에 연달아 터졌다는 것을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게다가 사건 사고 하나하나를 들춰보면 이것이 21세기 민주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물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참혹했다.

1970~1980년대에도 군에 구타는 있었다. 그러나 윤 일병 사건처럼 링거를 맞힌 뒤 다시 때리거나 가래침을 핥게 할 정도로 잔인하지는 않았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취재 경험에 비춰보면 세월호 참사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빴다. 당시엔 인근 주민들과 해경 등이 서둘러 달려가 70명을 구조했고, 3주 만에 희생자들을 모두 인양했다. 누가 해도 이보다 못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박근혜 정부는 철저하게 무능했다.

나는 2014년 한국사회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나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단원고 학생들은 침몰하는 순간에 ‘사랑한다’는 문자메시지를 가족들에게 보냈다. 이 아이들은 끝내 구조되지 못했다. 아이들이 공포 속에서 집단으로 침몰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는 한국이 내전이나 분쟁으로 이웃과 가족을 잃는 시리아나 팔레스타인 자치구보다 뭐가 나은가.

가치의 전복, 정의와 불의의 도치가 일상에서 일어났다. 보수단체 인사들이 사제폭탄을 던진 고교생을 치켜세우고 모금운동을 벌였고, 테러와 린치로 악명 높았던 서북청년단은 서울 도심에서 재건 총회를 열었다.

지난 1년 동안 역사의 시곗바늘은 확실히 거꾸로 돌았다. 어머니의 실직으로 생활이 막막한 세 모녀의 삶은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됐던 19세기 프랑스를 떠올리게 했고, ‘땅콩 회항’ 갑질이나, 염전노예 사건은 우리가 봉건시대에 살고 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정당해산 결정은 한국의 민주주의 시계를 조봉암을 사형대로 보내고 진보당 등록을 취소했던 1950년대로 돌려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역사는 진보한다고 생각한다. 서슬 퍼런 독재정권을 이겨내고 민주화를 이뤄냈던 기성세대들은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이란 믿음이 강하다. 군사정권 시대나 볼 수 있는 퇴행적인 현재의 모습은 일시적일 뿐 다시 세상은 저절로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불통’ 박근혜 정부가 물러가고 새 정부가 들어선다면 세상은 변할까.

1987년 민주화운동의 결실로 설립된 헌법재판소가 반민주주의적인 해산 결정을 내린 것처럼 법과 제도만으로 세상은 좋아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제도의 문제,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의 체제가 아니라 사회의 상태다. 한 사회의 문화적, 지적 토양에 따라 민주주의는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유신 독재 시절에나 볼 수 있던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이 드러나 정당성이 훼손된 박근혜 정부는 경찰력과 사정기관에 의지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오체투지 시위마저 막았다. 사정기관이 총동원돼 청와대로 향하는 화살을 막아주고 있는 양상이다.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로막는 것은 늘 경제 성장의 논리였다. 과거 지도층 인사들은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고 했다. 경제만 좋으면 세상은 나아질 것이라는 박정희 시대의 구호를 박근혜 정부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노동자 희생=재벌 특혜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장삼이사들은 희생의 ‘제물’이었다. 이번에도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비정규직 고용제한 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려 하고 있다.

한 발자국 후퇴한 시곗바늘을 다시 앞으로 돌리는 데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시민과 군인들도 문자를 읽고 쓸 줄 알았지만 게르만족의 침입 후 500년이 지난 10세기에는 유럽 왕과 황제도 까막눈이었다. 8~9세기 프랑크왕국의 샤를마뉴 대제, 10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오토 1세는 문맹이었다. 나아가려면 분노하고, 저항해야 한다. 가만 있으면 퇴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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