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의 세상과 늑대

2015.01.04 20:44 입력 2015.01.04 20:48 수정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5년 올해는 양의 해더군요. 그것도 청양(푸른양)이라 하여 양의 해 중에서도 길상하다고 하니 올해는 좋은 일이 많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아침을 열며]개들의 세상과 늑대

양을 떠올리면 함께 생각나는 동물이 여럿 있습니다. 우선 양치기 목동을 따라다니며 양을 지키는 개가 있습니다. 또 이 양들을 잡아 먹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는 늑대도 빠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화나 동화에는 이들이 벌이는 싸움이 많이 등장합니다.

아시다시피 개는 충성심의 상징입니다. 이에 반해 늑대는 인간에 의해 약탈자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의 이미지도 함께 있습니다.

개와 늑대는 원래 개과에 속하는 한 종이었지만 진화를 통해 개와 늑대라는 판이한 개체로 변화했습니다. 그럼 이 진화의 과정 속 어떤 요소가 이 둘을 갈라 놓았을까요. 여러 요인 중에서도 ‘먹이’라는 요인이 가장 클 듯합니다. 먹이, 즉 먹고살기 위해 어떤 삶을 선택했느냐가 이 둘의 운명을 갈라 놓았습니다. 개는 먹잇감을 쉽게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왔고, 늑대는 힘들더라도 산속 바위틈에 터를 잡아 말 그대로 야성이 철철 넘치는 늑대가 됐습니다. 개는 충성의 상징이지만 그 충성이 먹이를 주는 주인만을 향해 있어 그다지 좋은 이미지는 아닙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욕설에 개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일 듯합니다. 더구나 우리들 가정에 애완견이 들어 앉으면서 개의 속성은 한번 더 진화했습니다. 그나마 근근이 남아있던 야성은 깡그리 사라져버리고 눈치, 재롱, 순종을 대변하는 새로운 종이 탄생한 것입니다.

지난해 우리는 이런 이미지가 드러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봤습니다. 청와대에서 받아쓰기를 하고 있는 국무회의에서도 보았고, 최고권력자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정치인들, ‘실세는 청와대 진돗개’라는 대통령의 말에 박장대소했던 그날 그 자리에서도 주인을 향한 복종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직언과 항변이라는 야생은 설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 눈치없이 입바른 소리, 국민들이 원하는 것들을 거론할라 치면 바로 유기견으로 전락합니다. 실제 세월호 관련 국무회의에서 내각 총사퇴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자 했던 모 장관은 퇴임절차도 없이 바로 짐을 싸야 했습니다. 조선 왕조시대에도 사간원이 있었고, 귀양을 가거나 삼대가 멸족을 당해도 직언을 고하는 선비들이 있었습니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속에서도 ‘통촉해 주시옵소서’라고 외치며 왕의 역린을 건드렸던 늑대들이 있었습니다.

권력주변만이 아닙니다. 자본의 주변에서도 개들의 속성은 드러납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갑질사건에서도 우리는 보았습니다. 주인대감집 맏딸을 구해내기 위해 온갖 협박과 회유를 저질렀던 대한항공 고위 임원들과 직원들. 그들의 먹이를 위한 눈물겨운 분투 속에서도 복종과 순종, 눈치라는 개의 이미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어디 권력과 재벌 주변뿐이겠습니까. 크든 작든 조직의 오너나 인사권을 가진 CEO를 향한 이 개들의 꼬리 흔들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행태는 점점 강도를 더해 갈 것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이미 늑대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돼 버렸습니다. 삶이 팍팍해지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개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더욱 공고히 하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땅이 개들의 세상이 될지라도 소신으로 직언과 항변을 마다하지 않는 늑대들은 존재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땅이 개가 아닌 사람의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종환 시인의 시에, 가수 안치환이 곡을 써서 부른 ‘늑대’는 어쩌면 점점 자취를 감춰가는 ‘늑대들’에게 바치는 헌사인지도 모릅니다.

“너는 왜 길들여지지 않는 것일까/ 편안한 먹이를 찾아 먹이를 주는 사람을 찾아/ 다들 개들의 무리 속으로 떠나가는데/ 너는 왜 바람을 피하지 않는 것일까/ 여름날에 천둥과 비바람 한겨울 설한풍 피할 안식처가/ 사람의 마을에 놓여있는데/ 너는 왜 바람 부는 들판을 떠나지 않는가?”

어떻습니까. 따뜻한 거실에서 주인이 주는 눈칫밥을 먹으며 재롱을 피우는 개들보다 좀 춥고 힘들고 외로워도 훨씬 당당해 보이지 않습니까. 새해에는 꼬리를 두 다리 사이에 감은 채 개처럼 깨갱거리기보다는 고개를 꼿꼿이 세운 늑대처럼 ‘아~~우’하고 한번 외쳐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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