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의 활약, 제도언론의 반성

2013.06.02 21:33
민영 |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왜곡된 ‘갑을 문화’를 반영하듯 초등학교 교실에도 서열관계가 존재하며, 이 구조 속에서 신체적 폭력과 관계적 폭력이 발생한다고 한다(5월25일자 12면 기사 참조). 지난주에도 소위 ‘슈퍼 갑’들의 도덕불감증과 준법불감증이 쟁점화됐다.

조세피난처, 대기업 총수의 비자금 조성, 부유층 자녀의 입시부정 등 그 이슈의 면면은 다양하지만, 그 본질은 매우 유사하다. ‘슈퍼 갑’을 이루는 사회지도층들이 우월한 정보력과 경제적, 정치적 자본을 바탕으로 더 굳건한 ‘갑’의 성곽을 쌓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각종 불법, 탈법 장치가 동원되고 있다는 것이다.

[옴부즈만]뉴스타파의 활약, 제도언론의 반성

지난주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소위 조세피난처(tax haven)에 유령회사를 세웠다는 유력 인사들의 명단을 추가로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어떤 구체적인 범법행위가 있었는지는 정부 당국의 조사를 통해 명백히 밝혀져야 하겠지만, 역외탈세나 자금은닉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조세피난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피난(避難)은 가뭄,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나 경제적 곤궁, 정치적 핍박 등과 같은 어려움으로부터 잠시 피하는 것이다. ‘조세피난처’라는 용어는 암묵적으로 ‘세금’을 개인의 복지를 해칠 수 있는 ‘위험’으로 간주하는 것이며 이를 피하려는 사람들에게 다소나마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이에 ‘조세피난’ 대신 ‘조세도피’나 ‘조세회피’라는 용어가 사용될 필요가 있다.

뉴스타파는 비영리 언론이기 때문에 국제탐사보도협회의 취재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다른 주요 언론들이 다양한 이해관계상 ‘슈퍼 갑’에 도전할 수 있는 내용을 제대로 다룰 수 없는 현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도언론과는 달리 영국의 BBC와 가디언,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일본의 아사히신문 등 해외 유력 언론사들이 ‘조세피난처 취재’에 참여했다고 한다. 경향신문은 뉴스타파의 발표 이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이 이슈를 다뤄왔지만, 전반적으로 주요 언론들이 이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는 상당히 미온적이고 유보적이다.

‘갑의 횡포’ 문제를 본격적으로 점화했던 남양유업 사건의 경우에도, 언론 보도가 제대로 이뤄진 것은 ‘을’인 대리점주들이 몇 달에 걸쳐 피해를 호소한 이후이며 인터넷을 통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자발적 불매운동 등이 시작된 이후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제도언론이 아닌, 대안적 채널들을 통해 의제설정됐다는 점은 경향신문을 비롯한 주요 언론이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이런 점에서 ‘갑의 횡포, 을의 눈물’이라는 연재 기사를 통해 사회 곳곳의 불공정하고 약탈적인 ‘갑을 관계’를 지속적으로 고발하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이다. 물론 고발과 더불어 공정한 ‘갑을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제도적 장치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도 이뤄져야 한다. 향후 보도에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갑’과 ‘을’이 건강한 선순환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례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제시해주길 기대한다.

울리히 벡이 적시했듯 우리는 위험사회(risk society)에 살고 있다. 여기서 ‘위험’이란 자연이나 환경에서 도래한 불가항력의 상황이라기보다, 인간의 활동과 불완전한 의사결정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 방사능 누출, 유전자조작 농산물, 환경오염 등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각종 ‘위험’ 이슈들이 지난주 지면을 장식했다. 특히 시험성적이 조작된 위조 부품이 사용된 것이 드러나 원전 2기의 발전이 중단됐고, 정부는 이를 ‘천인공노할 비리’로 규정하며 관련자 엄벌 의지를 표명했다. 그동안 정부는 원자력 발전을 ‘과학’의 범주로 다뤄왔으며 과학을 통해 그 안전성과 효율성이 입증된 것으로 틀지어왔다. 언론 보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전 사고가 빈번히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적인 사건 보도로 다루어온 것이 사실이다. 원자력 문제에 대한 전문기자를 보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지속적이고 심층적인 취재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주 연재기사 ‘원전, 위험을 안고 산다’는 주목할 만했다.

원자력 발전에 내포된 위험이 과학적 요인들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적 주체들의 행위와 의사결정에 의해 중첩적으로 구축된다는 점을 잘 전달했기 때문이다. 향후 일본 방사능 누출, 유전자조작 농산물 수입, 용산 미군기지 주변 기름오염 등에 대해서도 이러한 심층보도를 기대해 본다.

현대사회의 많은 ‘위험’이 인간의 행위에 의해 초래되는 만큼 인간 의지에 의해 위험 가능성이 감소될 수 있는 여지도 크다. 그러나 그 전제조건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관련 주체들에게 논의의 장을 개방하는 것이다. 이번 원전 비리 사건에서 나타났듯 폐쇄성은 ‘위험’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언론은 ‘위험’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 주체이다. ‘위험’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소통하는 책무도 언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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