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사고’ 미확인 정보 보도 말길

2013.07.14 21:55
정일권 |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아시아나항공 214편 보잉 777 여객기가 활주로에 부딪쳐 승객 3명이 숨지고 180여명이 다친 사고와 관련한 기사 중 상당수는 사고 원인을 다루고 있다. 이 기사들은 논리적 모순, 미확인 정보의 활용, 추측보도 등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고 독자들은 기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다.

지난 8일에는 입지조건과 시설을 고려할 때 샌프란시스코 공항이 다른 공항보다 착륙하기 까다롭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부분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 공항에서 이번 사고 이전에 일어난 다른 사고에 대한 정보, 그리고 착륙의 난이도에 대한 객관적 평가 즉 다른 공항과 비교한 상대적 난이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어야 한다.

[옴부즈만]‘항공기 사고’ 미확인 정보 보도 말길

그러나 지난 한 주간의 어느 기사에서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과거에 항공기 착륙사고가 났다는 내용을 볼 수 없다. 또한, 기장노선자격심사 규정에 나와 있는 공항의 난이도 혹은 심사대표공항에 대한 설명도 찾아볼 수 없다. 기사는 단순히 이런 주장이 있다는 점만 알린 것이다. 독자들이 정말 알고 싶어 하는 것은 그러한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인데 이를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전혀 제공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당시 공항에서 진행되던 공사로 인해 착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설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사고가 났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보도되었다. 이 주장이 타당하다면 사고기 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착륙을 시도했던 다른 비행기들이 사고 혹은 사고위험에 처하는 경우들이 생겼어야 한다. 동일한 조건에서 왜 단 한 대의 비행기만 사고가 났을까? 라는 의문은 당연하며 완결된 기사는 이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했어야 한다.

다른 기사에서는 “사고기가 전원공급 이상을 겪었다는 보도도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라고 보도했는데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보도해서도 안되며 정보원을 합당한 이유 없이 밝히지 않은 것도 문제다. 이런 불완전한 정보를 다룬 기사는 미확인 정보인 루머를 확산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무책임한 기사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 보도의 대표적인 예는 조종사가 착륙하기 전에 이미 항공기 기체 이상을 감지하고 관제탑에 비상대책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는 CNN 보도를 인용한 기사다. 결국 이 내용은 오보로 판명되었다. 교신 내용과 시간은 녹음된 자료를 확인해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이기에 이러한 확인 없이 다른 언론사가 보도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사화할 수는 없다. 기자는 속기사가 아니라 취재자여야 한다.

한편 꼬리 부분이 먼저 바닥에 닿았다는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한 교수가 “이는 착륙 당시 비행기 앞부분이 정상치보다 더 올라갔다는 뜻”이라고 말한 내용을 보도하고 있는데 꼬리가 지면에 먼저 닿으면 앞부분이 들렸다는 것은 동어반복이다. 이런 내용을 전문가 인터뷰 형식을 빌려 보도하는 것은 지면 낭비다. 결국 쓸 내용이 없어서 뉴스 가치가 없는 내용을 억지로 엮어서 지면을 채운 셈이다. 이런 기사는 독자입장에서는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다.

또 같은 날 지면에 부상을 입은 사고기 승객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게재되었다. 나중에 부부로 밝혀진 남녀 사이에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이 놓여있는데 이로 인해 이들은 이후에 SNS와 인터넷 등에서 비상탈출 시에 자기 가방을 챙기려다 다른 승객 탈출에 피해를 준 몰지각한 사람으로 비난받게 된다. 승객을 피해자 입장에서 다루고자 했다면 다른 사진을 선택했어야 하고 애초부터 이러한 행동을 꼬집을 생각이었다면 이들의 얼굴을 가리는 등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사고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여러 차례의 브리핑에서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규정하지 않았지만 분명하게 조종사 과실을 지적했다. 이에 반해 아시아나항공 측에서는 사고 직후부터 원인은 모르겠으나 조종사 과실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양측 모두 지나치게 성급하고 자의적이라는 비평을 받을 만하다.

아직 조사가 채 끝나지 않았는데도 결론 혹은 이에 접근하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썼다. 독자들의 억측을 자아내고 또 그러한 억측에 확신을 가지게 한 것이다.

사고 원인에 따라 이번 사고의 책임소재가 정해지고 피해자에 대한 손해 배상 책임자, 법·제도적 제재의 방향과 수위가 달라진다. 그뿐만 아니라 해당 항공기의 조종사는 영웅이 될 수도 있고 죄인이 될 수도 있다. 많은 결정이 사고원인에 따라 이뤄진다. 신중에 신중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근거를 채 확보하지 않은 채 많은 ‘설(說)’을 유포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는 점을 밝혔다는 것만으로 언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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