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그리고 ‘학피아’

2014.06.22 20:51
우희종 |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국민들은 의도적 살인에 가까운 세월호 사건과 여러 사회 지도층의 막말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민낯에 직면하게 되었다. 세월호 사건의 외형만 보면 누군가의 표현처럼 단순한 교통사고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이면은 정부의 기업친화성 규제 완화라는 신자유주의와 낙하산 인사나 외부 권력과의 끈끈한 유착관계인 관피아 문화가 빚어낸 것임은 확실하다. 관피아는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이 견고한 우리 사회의 관피아 문화에는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지식인과 학계가 있다. 소위 정부나 기업과의 긴밀한 유착관계를 통해 폐쇄적 이해관계를 향유하는 학피아이며, 이들은 국내 대학이나 학계에서 배타적 기득권 구조를 형성해 건전한 교육연구 문화를 막고 사회발전을 훼손시킨다.

[시론]서울대 그리고 ‘학피아’

학피아 유형은 매우 다양해서, 무조건 정부 주장을 지지하는 폴리페서 유형처럼 드러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학내외적으로 은밀하게 작동하고 적법성으로 포장하기에 실체를 외부에서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최근의 서울대학교 총장 선임 과정도 그렇다. 2010년 12월 당시 이명박 정부가 새해예산안, 4대강 사업법 등과 함께 여당 단독으로 날치기 통과시킨 서울대 법인화법에 의해 차기 서울대 총장이 지난주 법인이사회에서 선정되었다. 물론 모든 과정은 적법하게 진행되었고 또 훌륭한 분이 선임되었기에 외견상 문제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사회 결정에 대하여 서울대 교수협의회장이 사퇴 의사를 표명하고 또한 많은 교수들이 정부에 의한 기만과 일종의 학피아 사례로 우려를 표명하는 것엔 이유가 있다. 공공성의 축소를 고집하던 정부가 국가기관의 민영화와 더불어 국립서울대학교의 법인화를 추진할 때의 명분은 세계적 대학으로의 서울대학교 발전을 위해 더 이상 국가 간섭 없는 대학 자율성의 확보였다. 제시된 개방형 이사회와 더불어 정부 인사들의 이사회 당연직 참여로 인한 대학 자율성 훼손 및 정부 개입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법인화 취지가 대학 자율성 확보라는 주장으로 일축되었고, 이것은 법인 이사회의 이사장인 현임 총장에 의해서도 지금까지 강조되어 왔다.

그렇기에 학내 구성원은 법인화 이후 첫 총장 선출에 있어서 총장추천위원회도 구성해 10여명의 총장후보들을 검토하고 또 여러 차례에 걸친 정책발표회 및 평가를 통해 학내 구성원이 원하는 총장 후보를 결정했다. 날치기 통과된 법인화 법으로 인해서 미비된 관련 규정을 만들어 가면서 준비한 기간까지 합치면 길게는 3년, 구체적으로는 1년 가까이 걸린 긴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사회는 최소한 3000명 이상의 교직원 입장이 담긴 보고서의 후보 순위를 15명의 이사 투표를 통해 일방적으로 무시해 버렸고, 그에 대한 근거 제시나 해명도 없는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였다. 이런 식의 이사회라면 차라리 학내구성원 직접 투표에 의한 기존 총장 선출방식이 더욱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할 것은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법인화에 의한 대학 자율화는 표면적 포장에 지나지 않아 대학 간섭과 규제가 정부로부터 정부인사가 주축인 이사회로 변형되었을 뿐이고, 법인화로 장차 관변 이사회와 학내 구성원 간의 분열과 대립이 생겨 서울대학교가 더욱 소모적으로 될 것으로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이 이사회로 인해 연출된 셈이다.

외부인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이처럼 학내 구성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총장을 선출할 때 신임 총장은 학내의 의견 청취와 자율성 확보보다는 이사회의 입장에 따를 것이다. 학내구성원들의 문제제기를 통해 신임 총장이 이사회의 입김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롭게 대학을 운영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서울대학교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건전한 고등교육 문화에 요구되는 자유로운 학문연구와 창의적인 교육이 얼마나 외부 권력에 취약한지를 잘 보여준다.

‘돌을 던지면 어리석은 개는 그 돌을 쫓고, 사자는 돌 던진 사람을 문다’는 말이 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나 결과만 좇아서는 문제 개선이 불가능하다. 세월호 사건이 선장이나 선주만이 아니고, 막말한 정치인, 목사, 교수만이 아니고, 또 선출된 총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구조와 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교수들이 신임 총장으로 내정된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면서도, 이번 이사회 행태야말로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권력 유착의 학피아 사례로 우려하는 이유이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