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사회’, 금리인하, 금융자본

2014.10.19 20:41 입력 2014.10.19 20:44 수정
조명래 |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2.0%로 내렸다. 돈을 풀어 내수를 살린다는 초이노믹스(양적완화)의 일환이다. 돈이 돈을 버는 시대에 부응한 정책이지만, 그 뒤엔 자본의 지배형태가 금융자본으로 바뀌고 사회 전체가 돈의 볼모가 되는 변화가 뒤따른다. 한국사회는 나라나 개인이나 모두 엄청난 돈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 ‘부채사회’로 급변하고 있다. 금리 인하는 그래서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모두가 빚을 지고 사는 세상이니 금리 인하는 부채 부담을 조금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채무 비용과 위험이 는다면 그 효과는 상쇄된다. ‘부채사회’에서 금리 인하는 이렇듯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깊게 드리운다.

[시론]‘부채사회’, 금리인하, 금융자본

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반응은 대체로 미온적이지만 부동산 시장은 유독 반기고 있다. 금리 인하는 자금 확보를 더 쉽게 해줌으로써 부동산 시장의 매수세를 되살려주기 때문이다. 매수세 증가는 기존 주택의 처분은 물론이고 신규 분양이나 미분양 해소, 나아가 매매로의 전환을 쉽게 해 전세난 완화를 돕는다고 한다. 하우스 푸어 문제도 덩달아 풀어줄 것으로 믿는다. 저금리는 이자율을 웃도는 수익률이 보장되는 오피스텔, 상가 등으로 돈을 몰리게 하여 부동산 실물에 대한 선호도를 높여주기도 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자산시장이 장기 침체되면 가계부채의 위험성이 더욱 높아진다’고 하면서 금리 인하의 불가피성을 역설한다. 이런 입장이 반영된 금리 인하는 지난 7월 발표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의 짝으로 나온 것이다. LTV, DTI 완화가 대출 규모를 늘려준다면, 금리 인하는 대출상환에 따른 비용부담을 줄여준다. 두 조치가 합쳐지면 돈을 더 쉽게 더 많이 빌려 집을 더 많이 사는 ‘부채형 부동산 거래’를 더욱 촉진하게 된다. 금리가 0.25%포인트 내리면 대출이 0.24%포인트 는다고 하니 대출 증가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금리 인하로 매매가 활성화되면 자산가치도 향상되고, 그에 따른 주거문제와 부채부담도 완화될 것이라는 게 최 부총리의 생각이다. 그러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의 비율’이 이미 OECD 평균의 1.6배인 우리 현실에서 부채형 부동산거래 활성화는 폭탄돌리기에 속도를 더한 꼴이 된다. 저금리로 부채가 늘면 가계 소비력은 더 떨어져 살려야 할 내수를 오히려 위축시킨다. 가처분소득의 반 이상을 부채상환에 이미 쓰고 있는 저소득층의 경우, 저금리로 빚이 늘면 상대적 궁핍은 더욱 깊어진다. 실질소득이 정체된 상태에서 느는 빚은 가계의 상환능력을 빠르게 약화시킬 뿐이다. 부동산의 자산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상황에서 부채형 자산매입 확대는 80%가 부동산인 가계의 자산구성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초저금리로 일으킨 대출은 향후 금리 인상 시 부채위험도를 쉽게 올려 가계경제를 위태롭게 한다. 부채사회에서 금리 인하는 이렇듯 집 가진 대출자들을 더 쉽게 ‘하우스 푸어’로 만든다.

금리 인하는 세입자들에게 더 큰 충격이 된다.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현상 때문이다. 전세금을 은행에 넣어 봤자 이자는 푼돈밖에 안된다. 그러니 기준금리의 4배(월세전환율)까지 허용하는 월세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월세로의 빠른 전환은 전셋집 부족, 전세금 인상, 월세 인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체인을 가동시킨다. 이 체인이 돌아가면, 세입자들의 ‘소득 대비 주거비용’은 급격히 커진다. 집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집 없는 대출자들은 금리 인하로 ‘렌트 푸어’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더 커진다.

금리 인하는 매수세의 회복과 수익형 부동산 투자 확대란 부동산 시장의 반짝 효과를 동반한다. 그러나 부채형 거래 급증으로 인한 소비 위축, 자산 구성의 취약, 주거비용 증가 등은 국민경제에 깊은 주름살을 남긴다. 이는 기본적으로 초이노믹스의 역설이지만, 그 뿌리는 우리 사회를 ‘부채사회’로 내모는 돈의 힘에 있다. 양적완화란 얼굴을 한 초이노믹스는 기실 금융자본의 힘을 내밀히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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